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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솔아 Aug 17. 2023

엄마의 성경 책에는 잠언 16장 9절에 밑줄 쳐 있었다



    “너 그러다 지옥 가.”


    뜬금없는 저주에 놀라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어젯밤에 꾸었던 신성한 꿈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꿈에 신이 등장했는데, 우리 가족들이 한 명씩 신의 은총을 받았더랬다. 엄마는 신의 손길이 얼마나 따스하고 후광은 또 얼마나 찬란하게 빛났는지 아직도 생생하다며 감탄했다. 그러나 그 은총의 자리에 없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엄마는 네가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라며, 지옥에 가고 싶지 않으면 이번 주 예배는 꼭 가자고 꼬드겼다. 가족 중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엄마의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전도 스킬 또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 또한 불신자로서의 믿음이 큰지라 엄마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엄마가 처음부터 신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은사님이 결혼 축하 선물로 성경 책을 주었을 때만 해도, 엄마는 차라리 생필품을 주지 쓸데없는 선물을 줬다며 방 한구석에 성경 책을 처박아두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한 엄마와 아빠는, 결혼 후 외딴 시골 마을로 이사 갔다. 아빠가 시골의 작은 동사무소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백화점도 없는 깡시골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절박하게 도시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박아두었던 성경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제 소원을 들어주시기만 하면 평생 동안 당신을 믿겠습니다, 아멘”과 비슷한 내용의 기도이지 않았을까. 신과 종신 계약을 맺은 엄마의 기도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곧 이루어졌다. 아빠가 인천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시골로 내려간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가끔 상상하곤 한다. 그 평행 세계에서 나는 더 행복했을까? 인천으로 올라온 뒤 우리가 살았던 첫 번째 집은 남의 집 지하실이었다. 저택의 현관문을 열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길이 갈린다. 왼쪽 계단을 내려가면 101호, 102호, 103호로 세 지하실이 있었고 우리 가족을 포함한 여러 식구들이 세 들어 살았다. 방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너무 작아서 서재 겸 창고로 쓰이고 큰방에서 온 가족이 옹기종기 붙어서 잤다. 집이 습해서 옷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변기 물도 잘 내려가지 않아서 세숫대야에 물을 퍼내려야 하는 집이었다. 그래도 나와 동생은 집에 돌아다니는 돈벌레와 바퀴벌레를 잡으며 모글리처럼 즐거워했다.




    부모님이 싸우게 된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른다. 가난이 좀먹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 때문이었을까.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잦아졌다. 밤새 들려오는 소란을 이불속에서 견디고 일어나 보면 엄마는 깨진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다. 아무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부터 침묵을 하나씩 나눠 갖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기도를 했다. 엄마의 머리가 찢어져 응급실에 실려가던 날, 새벽에 내 손을 잡고 맨발로 뛰쳐나와 할머니 집으로 도망가던 날, 부엌칼을 휘두르던 아빠가 분노와 자기혐오를 못 이겨서 벽지가 빨갛게 물든 날에도. 엄마는 성경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고통도 모두 신의 뜻이라 여기는 순교자처럼, 엄마는 계속해서 아빠의 옆을 지켰다. 둘은 서로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구원이라는 것은 얼마나 공허하고 얄팍한 약속인지 오래 생각했다. 한때는 나도 눈을 감았다 뜨면 다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적 있다. 그러나 신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신이란 게 정말 있다면, 그저 무심한 구경꾼임이 분명했다. 죽고 난 뒤가 아니라 사는 동안 행복하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생존 방법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방관자가 되었다. 믿음, 소망, 사랑 대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자.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믿자. 열심히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제 일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자. 그렇게 살다 누군가 내 삶에 접힌 페이지에 대해 물어보면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지난 페이지 대신 앞으로 쓸 페이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미래에 대해서 말하면 어느 것도 되지 않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쓰고 있는 책이 성경 책은 아닐지 두려워질 때마다, 누군가에게서 부모님의 망령을 볼 때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잠에 들었다.




    요즘 엄마가 본가에 오라는 말을 하는 날이 부쩍 늘었다. 뭔가 중요하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듯해서 막상 가보면 별말 없다. 거실에서 같이 TV를 보다가, “니가 잘해야 결혼해서도 잘 산다.”라는 말을 툭 던진다. “사람 인상이 참 좋더라. 그치? 그러니까 너만 성질 죽이고 잘하면 돼.”라는 말도 굳이 덧붙인다. 앞으로 있을 딸의 결혼 생활이 내심 걱정되는 모양이다.


    운이 좋게도 나의 애인은 ‘사랑은 나의 종교’라고 믿는 사람이다. 불신으로 가득 찬 나에게 새로운 믿음을 전해주었다. 암흑 같은 밤에 혼자 잠에 깨면, 그가 곁에 있다. 그는 잠결에도 손을 꼭 잡아주는 버릇이 있다. 그 체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게 만들어 준다. 엄마 말처럼 나는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는 동안 내 접힌 페이지를 함께 들여다봐주고, 다음 페이지를 같이 써내려 갈 사람이 있기에, 지옥에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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