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앤테이크
대학 입시를 공부해본 사람들의 목표는 어디였을까요?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가고싶은 학교는 어디였나요?
마음 속으로는 서울대 였을겁니다. 각자의 현실적인? 문제로 이 목표를 입 밖으로 말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있었겠지만요. 거의 모든 수험생은, 그리고 수험생이었던 우리의 최종 목표는 서울대 였습니다. 이 사실이 옳든 그르든,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않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 또는 비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들은 이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특별한 비법, 방법 같은건 없거든요. 그냥 공부하는 겁니다. 우직하게 엉덩이 붙이고 집중과 몰입의 태도로 공부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시간 앉아 있으면, 그 시간에 비례해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집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무식하게 앉아있는다고 공부가 되고 능률이 생길까하는 의심도 생깁니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바보같이 앉아있는 시간을 늘리다 보면 하나 둘씩 공부하는 방법도 알아가게 되고 학습에 대한 이해의 속도도 빨라지게 됩니다. 사실 모든 분야가 그렇습니다. 먼저 바보 같이 무식하게 일하는 시기를 겪어야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법도 알게 되는 것이죠.
처음에는 비효율적일 정도로 오랜시간 갖은 시도를 하면서 소위 삽질도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게되고,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효율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건 바로 시간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바보같고 멍청해보이는 시간을 잘 이겨내고 꾸준히 하는 사람은 시간을 레버리지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원하는 것과 가까워 지는 것 입니다. 반면에 그 기간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늘 제자리를 맴돕니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원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합니다. "나 자신이 글 쓰는 데 소질이 없음을 발견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하지만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 써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때 이미 나는 유명 작가가 되어있었으니까."
이렇듯 누군가에겐 시간이 자산이 되고, 누군가에겐 시간이 부채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는 이야기 입니다. 주변을 조금만 관찰해보면 이런 진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버티지 못해 포기하고 내려놓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하찮아 보이는 재주로 시간을 견디며 지내온 누군가가 끝내 성장하고 해내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목격하게 되는지...
누군가는 시간을 견디는 힘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쉽게 굴복하고 타협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각자에게 정해진 운명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운명이 있을 리 없습니다. 운명은 우리들의 인생 앞에 그 무엇보다 공정하고 평등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루 24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은, 적어도 운명이 시간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 입니다.
오늘 하루 겪게 되는 24시간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곧 운명 그 자체 인 것입니다. 결국 운명이란 한 사람이 주어진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성의 영역일 뿐, 이것은 결코 고정된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이 운명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이 있습니다.
내가 소유한 시간의 주인이 <나>라면, 그 운명의 주인공도 <나> 입니다.
여기까지 동의할 수 있다면 이제 진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소유한 시간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나>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소유한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왜 내 시간의 진정한 주인이 되지 못하는걸까?" 바로 이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 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우리는 모두 서울대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답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커녕 비슷한 목표의 대학도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만약 하루 8시간씩 온전히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한다면,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무조건! 100% 가능성으로 9개월 후에 서울대에 갈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약 6개월동안 하루에 2시간씩 웨이트를 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100% 가능성으로 무조건 몸짱이 될 수 있다면?, 만약 5년 동안 매일 새벽에 일어나 1시간씩 책을 읽고 가벼운 명상과 운동을 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100%의 가능성으로 자신의 연봉이 2배 상승한다면? 그렇다면 어떨까요? 장담컨데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렇게 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죠.
"운명이 바뀌었어!"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우리에겐 믿음이 부족합니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부족한 것 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과 불신의 영역에 밀어넣고는 자신의 능력과 운명을 탓합니다. 우리들의 능력과 운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먼저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조금만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고, 조금만 힘들어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쉽게 포기하는 사람"과 같은 능력과 정체성이 아닙니다. 단지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부족한 가능성이 높습니다. 믿음과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만 힘든 것 입니다. 그러다 작은 문제라도 만나면 오히려 잘됐다 싶어 그만두고 포기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을만한 일인지 성찰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난 뒤, 지금 내가 그 믿음과 확신을 감당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상태인가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과 확신, 자신감은 과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압도적 다수의 문제는 믿음과 확신의 부족에서 생겨납니다. 차차 그 단계를 지나감에 따라 믿음과 확신에 의심과 성찰을 담아내면 될 일입니다.
먼저 결과를 정해놓고 시작하세요.
이미 서울대를 갔다고 생각하고, 이미 서울대를 간 사람이 경험한 과정을 겪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이 감당하고 이겨내야 했던 시간을 먼저 겪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기브앤테이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고 받는 것> 입니다. 혹시 <테이크앤기부>란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전세계 어디에도 <받고 주기>라는 말은 없습니다. 여기에 시간과 운명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주는 것이 먼저, 받는 것은 나중" 입니다.
이 순서를 바꾸지 않는 것이 성장과 성취의 공식입니다. 먼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받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먼저 주는 것이 많을수록 시간은 나의 편이 되어줍니다. 현명한 농부, 아니 적어도 상식적인 농부라면 자신이 뿌리지도 않은 씨앗이 싹트길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의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 비옥한 토약, 적절한 일조량, 강우량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각자 조금은 덜 비옥한 토양, 부족한 일조량과 강우량 같은 저마다의 사정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씨앗 심기를 포기해서야 될까요?
자신의 연봉을 높이고 싶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먼저 보여주세요. 이미 그 연봉을 받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입니다. 먼저 주면 나중에 받는 것 입니다. 그 누구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와 다짐, 마음가짐으로 당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결국 당신은 당신이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다 라는 계획으로 당신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아무리 자신의 목표와 다짐, 계획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해도,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이것은 개소리일 뿐입니다.
먼저 주는 사람,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시간은 레버리지 수단이 됩니다. 먼저 주는 행위를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 먼저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좋은 것을 먼저 주세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씨앗을 심고, 생각을 뿌리내린다면 이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 입니다. 혹 어떤 이는 먼저 주는 사람, 즉 "기버가 성공하기 보다는 상대를 봐가면서 주는 사람이 성공하더라"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을 보고는 반문 할지 모릅니다.
그냥 먼저 주세요. 우리가 언제는 자기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그렇게 먼저 내어주는 사람이었나요? 그러고난 후에 믿음과 확신이라는 씨앗이 이미 열매를 맺은 듯 행동하세요. 미리 결과를 정해놓고 시작하는 이야기 입니다.
저는 당신이 의심대신 확신과 믿음을 가질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