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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한 Nov 06. 2023

자녀를 보는 즐거움은 사람의 가장 거룩한 즐거움이다.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22개월 전,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남편은 정관수술을 했다.

내가 산후조리원에 있을때였다.



 큰 이유중 하나는 남편이 출산장면을 의도치않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13시간에 걸친 유도분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분만 확률이 떨어졌다. 아기에게 전해지는 산소수치가 기준이하로 떨어지면 띠띠띠하는 경고음이 울린다.  

 그렇게 경고음을 듣고 심호흡 하며 재도전하길 여러번, 의사선생님은 이제 그만 포기하고 수술실로 가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볼게요! 라는 말에 의사선생님은 '그런다고 되는게 아니다'라면서도 내 의견을 따라주셨다.(라고 쓰고 '머리를 절레절레하며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고 읽는다.)


그런데 갑자기 아주 심한 진통이 시작됐고, 아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남아계시던 간호사선생님은, 나보고 '더이상 힘을 주지말라'는 불가능한 주문을 하셨다. 의사선생님이 오셔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기아빠가 그냥, 여기 계시는게 좋겠죠?"

라고 말씀하셨다.

 분명 분만이 가까워오면 남편은 방 밖으로 나가있어야한다고 하셨는데, 간호사선생님의 당황한 목소리와 눈빛에 남편은 분만실 밖으로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다.  

그렇게 남편은 츄리닝을 입고 내 사타구니를 들여다보며 '여보 힘줘!'가 아닌

  "힘주지마! 애기나와!"

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괴랄한 출산경험을 해야했다.



 그리고 정관수술에 박차를 가하게되었다.


 정관수술을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는것 같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남편은 '애낳다가 아내가 죽을뻔 했다'며 엄살을 떨었다.


  "나 진짜 정관수술 해? 하러간다?"

라는 남편의 물음에 '혹시나 이혼을 하거나, 나와 사별을 했을때를 고려해서 잘 결정해라'라는 말은 해주었지만 여러 이유로 힘들었던 나의 임신기간을 돌이켜봤을때, 남편의 결정을 선뜻 말릴수 없었다.


정관수술을 고민하는 짧은 시간동안 외동이 나은 이성적인 이유들도 몇개 떠올랐다.

1. 답이없는 형제일 바에는 오히려 없는게 낫다.

2. 한명에게 조금이라도 재산을 더 물려주고 부족함 없이 키우자.


이러한 이유들에 힘입어 정관수술이 곧 장렬하게 집도되었다.


그리고 22개월 후, 바로 엊그제인 11월 3일.

남편은 정관복원수술을 받았다.  


이토록 빠른 태세전환이라니, 내가 써놓고도 어이가 없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 아이를 키우다보니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위의 2가지 명제가 흔들렸다.


1. 때론 짐이 되는 형제여도 좋으니, 우리가 죽고나면 장례식에 첫째 옆에 누군가 함께 서있었으면 좋겠다.

2. '외동인데 이것도 못해주랴.'라는 생각으로 돈을 어차피 2배 쓰게된다.

 게다가 이렇게 박봉으로 살아서는 어차피 물려줄 재산이 별로 없을것 같다. 차라리 가족행사떄 자녀들끼리 돈을 소위 'N빵'하는 이득이라도 있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든 탓이었다.


 솔직히 육아는 꽤 고통스럽다. 마치 수명이 깎이는 느낌이다. 실제로 아들을 2명이상 가진 엄마의 평균수명이 2년 정도 짧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수명뿐인가, 돈도 체력도 젊음도 깎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기를 둘, 셋, 넷 더 낳을 이유가 없다. 낳을수록 손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정말로 너무 귀엽다!

포동포동한 두 다리와 오물오물한 입술, 방귀가 뽀옹 나오는 분내나는 엉덩이까지.

솔직히 그냥 평균적으로 생긴 조그마한 인간일 뿐인데 왜이렇게 귀여워서 터트려버리고싶은지.

 이런 생명체가 둘이 된다면 더 좋을것 같고, 심지어 그 둘이 내 생명을 일부 갉아먹는대도 괜찮을것 같다!


이런 내 격정적인 마음을 고상한 명언으로 남겨주신 분이 있으니, 몬테소리, 프뢰벨과 더불어 20세기 신교육의 지평을 연 스위스의 교육학자 페스탈로치다.


그는 부모가 아이를 보는 일이 '성스러운 즐거움'이라고 했다.

성스러운 쾌락이라니, 얼핏 모순된것 같다. 희생과 같은 거룩한 행동의 끝이 숭고함이나 보람일수는 있지만, 쾌락일수는 없지 않은가. 또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게 하고싶은 걸 맘껏 할때 느껴지는 감정이 '즐거움' 아니던가. 어떻게 거룩하면서 즐거울수가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에 그런 프로세스가 가능한게 육아다.


 자녀를 보며 짓게되는 미소는 순도 100의 플래티넘같은 드문 즐거움이다.   

바꿔말하면 그정도로 즐겁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만큼 힘든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정말 모순적인 경험이 아닐수 없다.



 미혼 혹은 아직 자녀가 없으신 여러분, '행복한 지옥'이 존재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출산 전후를의 삶을 비교하는 개인적인 소회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꼭 이 말을 한다.

"이전엔 천국이긴한데 딱히 막 행복하진않았거든. 근데 이젠 엄청 행복하긴 한데 지옥같아."

물론 후자를 겪어보아야 전자가 상대적으로 밋밋해지는 것이기에, 육아를 하지않은 삶이 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병존할수 없기에 선뜻 어느 하나를 고르기 어려운 두 세계일 뿐이다.


 우리부부는 그 두 세계 중 조금 더 빡세보이는 육아스테이지를 선택했고, 정관복원수술을 통해 언젠가 다자녀모드에 돌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현재 모로 눕지도, 멀쩡히 걷지도 못하는 상태이고, 정관복원수술 예후가 좋더라도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이전에 비해 많이 적다. 심지어 나중에 둘째를 만나게된다면 '엄마가 배아파낳았다' 라는 생색의 지분을 남편에게  나누어줘야겠지만 정관복원수술을 결정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팔자에 없던 장남이 될 가능성을 인지한 듯, 아빠의 수술부위를 집요하게 공략중인 첫째를 보니 '이게 진정 잘한 짓인가' 조금 의심스럽긴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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