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앓고 있던 문제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체로 문제의 원인은 (마음의) 날씨였는데 나는 그걸 한 사람의 탓으로 귀결 짓곤 했다. 그래서 어두웠던 그 계절을 생각하면 눈이 발아래로 깔리고 내리는 눈에도 무채색으로 어둡게 물들어가던 밤에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서 있게 된다.
최근에 마음을 앓던 시기의 일기를 다시 읽었다. 스치는 바람에도 눈물을 흘린 날들이 있었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속에 지울 수 없는 알코올의 향이 있었고, 혼자 서 있지 못해 이리저리 다른 곳에 기대다가 주저앉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아스팔트와 무릎이 만나 깨지는 날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서 내 무릎은 울퉁불퉁해졌다.
아무튼!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러니까 단단해졌다.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앓았던 날들의 마음과 기록을 잊고 있었다. 21년 새해가 밝아오는 기념으로 옛 일기장들을 다시 펼쳤을 때 과거의 나를 읽으면서 나는 마음 한쪽이 아파졌다. 그 아픔을 고스란히 앓았던 내가 가엽고 한 편으론 오늘의 내가 된 내가 자랑스러웠다. 분명 나는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지금의 나에게까지 이른 것인데 그 아픈 계절의 나는 꼭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시간에서 다른 곳에서 다른 계절에서 살고 있는 사람. 나는 그 시간으로부터 단절되고 새로 시작된 것 같았다. 꼭 한 번 죽었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도 안다. 변화는 서서히 있었을 테니까.
그 일기를 읽으면서 이제는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도 많이 아팠던 것 같은데,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내가 괴롭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의 상처와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이해해주지 않았다. 조금 더 보듬어주거나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자아에 고립되지 않고는 생각이 불가능한 날들이었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없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그때 그 시간에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곳에서 그 계절들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니까. 마치 매우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시절의 일들을 과거의 나한테 맡기기로 했다. 무책임하거나 낙천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21년도의 내가 올해도 잘 헤쳐나가고 잘 이겨나가고 작고 행복하고 평온한 하루들을 잘 쟁취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처럼. 16~19년에 있는 현진이가 그 시기를 잘 견디고 아프지만 온전히 아파하고 모든 시간들을 충만히 받아들이면서 잘 지낼 거라고 믿기로 했다.
이게 무슨 생각의 흐름인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설명이 실패했다는 건 저의 능력 부족이겠죠.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지난밤에 친구를 만나서 과거의 아픔을 아직도 안고 있는 친구를 보고 그렇게 말해줬다. 그 문제는 과거의 너한테 맡기라고. 모르겠다. 고여있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고여있는 것은 그 사태를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해결하기가 어렵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문을 열고 나와. 그리고 그 자리에 과거의 너를 앉히고 과거의 너에게 맡겨! 더 이상 오늘의 네가 아파하지 않도록.
쓰고 나니 이게 무슨 어불성설이지 싶은 마음이 드네요.
아무튼 전달하고픈 마음이 잘 전달이 될런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