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lvia Plath
실비아 플라스, 그 이름에 묘한 매력이 있어.
실비아 플라스가 누군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시집은 읽어보지 못했어도 “벨자”는 읽어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두툼한 그녀의 일기라도. 왜냐면 내가 그랬거든. 플라스의 시집은 집에 없는데 플라스의 소설과 일기는 소장하고 있지. 그녀는 시인인데 말이야. 이럴 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는 시인, 그 타이틀에 처음 그녀가 궁금해졌어. 어떤 사람인지. 괜히 더 미안해지네. 그런 걸로 그녀에게 호기심을 품었다는 게. 그녀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벨자“를 읽었어. 그 뒤엔 그녀의 일기가 너무 갖고 싶었다. 그녀의 일기까지 읽고, 나는 그녀를 조금 사랑하게 된 것 같아. 그녀처럼 오븐에 머리를 넣고 죽지는 못했지만......
죽음을 자주 생각했을 때, 그녀의 일기가 내게 이상한 위안이 되었어.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일기의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거나, 오늘과 같은 날짜에 실비아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찾아 읽었다. 그러면 그 일기가 꼭 내게만 보내는 편지 같았고, 그 일기를 읽다 보면 우울한 마음도 깊은 고민도 조금씩 덜어지는 것 같았어.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친구가 가까이에 있는 기분. 남의 일상과 다짐 그리고 생각에서 위안을 얻다니,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야. 그녀의 일기 속에 단순히 유명인의 허울 좋은 멋들어진 문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과 순간과 마음이 거기에 있어서, 그래서 좋았어. 그녀의 일기를 읽는 순간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일기와 그녀의 글이 위로로써 필요하진 않지만, 갑자기 어느 날 “벨자”가 다시 읽고 싶었어. 사실, 갑자기까지는 아니고, 줄리언 반스의 “예감을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나니, 필립 로스의 “울분”이 생각나고, “울분”을 생각하니, “벨자”가 읽고 싶었어. 비슷한 시대 분위기와 우울을 느꼈던 것 같아. 그래서 오랜만에 리커버로 나와서 소장용으로 구매한 내 “벨자”를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에스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섭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