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cedie Apr 06. 2022

淸明


2022년 4월 5일, 이날은 청명이며, 식목일이고 나의 연차 날이다. 청명이란 절기랑 잘 어울리는 맑은 하늘과 따듯한 햇살이 있는 하루였다. 다음날은 한식이다. 한식이 뭐 하는 날인지 정확히 몰라서 찾아보니 역시 몰랐던 게 맞았다. 청명이랑 한식은 같은 날이기도 하고 다른 날이기도 한다고 한다. 한식이라는 날도 재미있는 날이었다. 4대 명절 중 하나라는데 뭘 하는지 이렇게 몰라도 되나 조금 창피하기도 하다. 한식(寒食), 일정한 기간 동안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 명절이라고 한다. 뭐 하는 일도 되게 많다. 제사도 지내고, 개사초도 하고. 유래 중에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던 건, 불도 오래 쓰면 헌 것이 되기 때문에 잠시 쉬고 새로운 불을 준비하는 과도기라는 이유였다. 고대의 사유가 때로는 더 지혜롭다는 생각이 근래 종종 든다. 죽음과 삶, 생명의 순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오늘은 오늘을 맞아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일기를 늦게 올리게 되었다.


그건 나무에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것 !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운 식물 친구를 입양하는 쉬운 방법이 있었잖아? 싶지만 그건 늦은 밤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는 유칼립투스와 삼색무늬달개비를 키우는데 유칼립투스에게는 새로운 집이, 달개비는 삽목이 필요했다. 아침에 일어나 상쾌하게 운동을 하고는 오늘을 위한 준비물을 샀다. 식물에게 줄 영양제는 깜박했지만 이동식 물받이를 샀다. 엄마와 같이 분갈이를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내 유칼립투스인 그리스의 새집으로 이사는 밤 이사가 될 예정이다.


운동을 다녀와서는 친구들에게 달개비인 베티미어를 잘 키워서 분양해주겠다고 당당하게 소리쳤기 때문에 삽목을 하기로 했다. 베티미어의 곁가지들을 쓱쓱 잘랐다. 잎과 풀이 너무 쉽게 쓱쓱 잘려서 한편으로 무섭고 또 신기했다. 잘린 자리가 잘 아물었으면. 생각보다 많이 자라지 않은 상태의 가지들을 잘라서 마음만 앞서서 삽목 한 걸까 걱정도 된다. 어쩌다 보니 그리스의 가지치기도 슥슥 했다. 수형이 너무 예쁘지 않은 것 같아서 고민이었다. 지난밤에 이제라도 어떻게 수형을 고칠 수 있을까 찾아봤는데 다른 집들 유칼립투스들도 다들 자유분방했다. 너 원래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나무였구나. 약간 자포자기한 마음이지만, 상한 가지들을 조금씩 정리해주었다. 잘 자라만 주면 걱정이 없겠다.


든든한 점심도 먹고 집안일도 하고 여러 잡일을 처리하다 보니 오늘 메인에 늦어버렸다. 메인은 소전서림이라는 도서관에 가서 북토크도 듣고 오는 것. 종이 사이에서 숲이라는 도서관에 다녀왔으니 확실히 나무와 가까운 일들을 많이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와 같이 그리스의 분갈이를 했다. 그리스에게 화분이 작은 것 같아서 큰 집으로 옮겨주려고 한 건데, 실제로 보이는 줄기보다는 뿌리는 크지 않아서 무리한 이사는 아니었을까 염려도 든다. 생명 미래와 가까운 일은 잘못될까 봐 사람의 마음을 쉽게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걱정이 정말 많은 날이다, 에효)

검색을 하다가 오늘 또 여러 곳에서 산불이 난 것을 알았다. 식목일도 그렇고 이 맘 때가 원래 불이 잘 난다고는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큰 불이 되지 않았으면 그렇게 기도해볼 따름이다.



이번 일기는 할 말도 많아서 쓰는 도중에 하루가 지나가 버릴 것 같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8분이 남았기에 지금은 미래의 일이지만 확실하다) 그렇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얻은 것이 많다.



절기를 생각하다가 4월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4월에는 왜 이렇게 사건과 사고가 많을까?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다. 절기뿐만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일들을 계속 상기하고 연대하여 기억하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확실히 마음은 맑은 날이었다. 아닌가, 걱정이 많았던 걸 보니 구름이 많은 날이었나? 어쨌든 하루에 많은 일을 해서 기분은 상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일이었으니까!



쓰다 보니 문득 신기하다. 이 24편의 일기를 다 쓰는 날이 기다려지고, 다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그리고 일기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계절과 시간의 순환이 느껴진다. 뻔한 이야기지만 순간이 소중하게 색칠되는 기분으로. 오늘 일기 끝.




PS. 춘분에 하려던 일, 그 속편.

편의점에서 꿀떡꿀떡이라는 떡을 사 먹었다. 늦은 밤에 꿀떡꿀떡 먹을 처지는 아니어서 다 먹지는 못했지만, 호떡도 먹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오늘은 떡 먹는 날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