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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시딘 Feb 27. 2020

크리넥스 물티슈


- 지구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이 우주안에서 모든 만남은 경이로운 기적입니다. ‘스카’, 당신을 스카라 불러도 될까요? 아니면 당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나요?     


그녀의 손가락과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 갔다. 등줄기를 타고 다시한번 부끄러움이 일었다. 천천히 그녀는 시선을 두었다가 책장을 넘겼다. 연한 핑크색의 손톱이 탁한 지하철 조명을 받아 성글게 반짝였다. 나는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루함에 스마트폰을 만지지도 않았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게 심호흡을 했다. 한낮의 지하철안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받으면 곤란하다.      


- “광활한 우주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죠. 우리은하계나 프록시마계나 저같은 존재는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다만, 이렇게 만나게 되는 존재들을 통해 짐작할 따름이죠. P-3 항성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책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그녀의 까만 정수리가 맑은 밤하늘처럼 청량했다. ‘불가능한 경이’. 6호선 지하철에서, 이제 막 한강진에서 이태원을 향해 달리는 오후 두시 십 분의 지하철 안에서 당신과 내가 만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작가인 나와 독자인 당신이 우연히 이렇게 마주할 확률이란. 지금 당신 앞에 선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저 당신의 독서를 지켜보는, 그 안에 어떤 티끌같은 방해도 되지 않기 위해 굳은 채로 서 있는 사물일 뿐이다. 당신의 머릿속에 형상화될 나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저 당신이 책값으로 지불했을지 모를 만삼천오백원이 아깝지 않기만을 바랄 뿐.     


- 푸른 별빛은 백만년 간 품은 빛을 아직 다 소진하지 못하고 희미한 광채만을 뿜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당신이 샤프를 꺼내 줄을 긋기 시작한다. 가느다란 샤프심을 타고 전해진 지하철의 미동은 밑줄에 심장박동같은 일렁임을 남긴다. 삼각지역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환승역인 탓에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들어온다. 문가의 기둥을 잡고 선 나는 그녀의 독서가 사람들로 인해 방해받지 않도록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단단히 그녀앞에 버틴다. 누군가 내 발을 밟는다. 사과의 말도 없이 지나간 무례한 중년 남자는 내 얼굴을 한번 노려보고 건너편의 빈 자리로 빠르게 가 앉았다. 오늘, 특별한 순간인만큼 나는 당신의 무례함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페이지를 넘기는 그녀의 손에 다시 집중한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 나는 그것을 알겠다. 오늘 당신을 보니 더욱 확실히 알 것 같다.


나는, ‘읽히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되고 싶은 것과 현실의 길목에서 마음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약해져 성글게 끊어졌다. 초파리같은 희망도 갖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칼을 뽑아들었으니 뜻이 있으면 뭐든 자르겠지.”

들고 온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는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이 내가 아닌 당신을 설득하기 위한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반찬을 안주 삼는 날이면 나는 꼭 커서가 지나가는 하얀 백지에 한 문장이라도 새기려 애썼다. 그것만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고맙고 징그러웠다.     

 

효창공원역을 지나며 당신이 한페이지를 넘긴다. 나의 하찮은 우주가 또 한 장 넘어간다. 나의 우주가 그렇게 대격변하듯 바뀔 것 같은 순간을 떠올린다. 등단소식을 알게 된 날. 오래된 문학개론 책 위에 쌓인 먼지같은 묵은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셨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상금 몇백으로 술퍼마시고 나면 백일몽처럼 훅 날아가는 거지.”

새로운 시작, 초심.... 당선소감에 쓸 단어와 감사를 전할 사람들의 이름을 고르고 있던 내게 술 취한 선배 한명이 후려치듯 중얼거렸다. 나보다 훨씬 먼저 등단한 그 앞에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간신히 마친 박사학위로 학교 시간강사와 논술강사, 그리고 가끔씩 보너스처럼 주어지는 유명인사의 대필 작업으로 그가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다를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글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것, 계속 쓰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지켜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선배 또한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는 것, 그러나 현실은 그가 글을 쓰도록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바로 알게 되었다.     


당신의 책장이 넘어간다. 독자인 당신을 보호하기 위한 내 팔은 점점 저리고 아파온다. 다리에 힘을 단단히 주고 지하철 기둥을 잡고 있던 팔을 내려 스트레칭을 한다. 생각난 듯 가방에서 당신은 스니커즈 초코바를 꺼낸다. 아, 뇌에는 단 것이 제격이지. 팔꿈치로 책장을 부여잡고 갈색 비닐 껍질을 까지 시작한다. 약간 녹은 초코바 위로 노란 땅콩이 드러나 있다. 초코바를 베어 문 당신의 입술이 귀엽게 오물거린다. 단 것이 주는 흡족함, 첫 입의 기쁨. 나는 그것을 안다. 그것은, 환각과 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      


이년전 두 번째 장편소설이 나왔을 때, 예상외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여기엔 한국문학의 원로인 B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70년대, 아름다운 문장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학계의 거목이라는 식상한 표현 외에 더한 찬사가 없을 작가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어디서든 보았을 그의 작품과 이름. 그가, 나의 작품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한국문학의 뉴웨이브’라는 과한 찬사는 언론지상과 책의 띠지를 장식하며 화제가 되었다. ‘인정받음’이 주는 그 기막힌 달콤함. 등단 후 5년간의 고군분투가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몇 달후.     


B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 뵙기도 전이었다. 사고, 갑작스런 심장마비 였다. 영정을 앞에 두고 나는 진심으로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한마디를 남겨주신 일도 감사했지만, 조금 더 건강히 살아계셨다면..... 그에 더해 조금 더 힘을 실어주셨다면.     

 

좋은 작가들은 많았고, 책은 계속 쏟아져 나왔다. 나의 책은, 이제 가판대를 떠나 대형서점의 J열이나 K열 두 세번째 책장에서 찾을 수 있는 재고로 남았다. 소진되지 않고 출판사의 창고에 남겨진 책은, 언젠가, 신인 편집자의 손끝에서 삭아 날아갈 부스러기가 되어 재활용센터로 넘겨지게 될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읽어주지 않았다면. 지하철의 탁한 공기 안에서 묵독하는 당신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마치 죽어버린 새를 들고 있는 느낌으로 내 책의 재고들을 부여잡고 어쩔줄을 몰랐을 것이다.      


- 스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 돌아갈 겁니다.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우주 공간으로 말입니다. 공감을 나누던 존재들이 남은 그곳으로.”

그녀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소멸하거나 외롭거나... 그 두 가지 중에서 당신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열차는 공덕역을 향해 출발한다. 이제 나는 독자인 당신 곁을 떠나야 한다. 달콤하고 고소한 초코바를 먹으면서도 책장에서 눈을 떼지 않던 당신은, 그러나 실수를 하고 만다. 134페이지, 책의 모서리과 표지, 갈색 초코렛을 묻히고 만 것이다. 끈끈해 보이는 갈색 초코는 당신의 지문과 땅콩, 크런치 부스러기를 남기고, 또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다급히 손바닥으로 초코렛을 문지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나는 서둘러 백팩 옆주머니를 연다. 카페에서 작업을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를 위해 물티슈는 외출 필수품이었다. 나의 생존도구인 소중한 노트북을 위해서다. 지하철은 이제 공덕역에 들어선다. 나는 당신에게 하늘색포장지에 천사같은 물방울이 그려진 크리넥스 물티슈를 내민다. 당신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어떻게 말을 건넬까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말을 하지 않고     


문장하나를 떠올리며 나는 그녀의 손에 물티슈를 쥐어주었다. 천천히 멈춰선 열차의 문이 열리고 귓불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천천히 움직이는 열차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유리창 밖으로 플랫폼을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간다. 나는 노란색 ‘나가는 길’로 향해 있는 높은 계단을 바라보았다. 숨을 꾹 참고, 오늘은 한 번에 뛰어올라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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