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내는 것에만 정신없다 보니, 억울한 세입자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사실 나도 건물주다.
계약서를 쓰러가기 전날 나는 꿈을 꾸었다. 허름한 노인네가 나를 부르는 꿈이었다. 그 노인은 내가 운영하던 분식집에서 매일라면에 공기밥을 드셨던 분이다. 매일 먹는 라면만큼이나 행색은 초라했다. 계산할때는 꼬깃꼬깃한 천원짜리를 냈다.
어느날 근처 공인중개사분이 밥먹으러 오셨는데, 그 노인을 보며 90도 인사를 했다. 듣자하니 그 근방 제일 큰 빌딩의 건물주다. 수백억 하는 건물의 건물주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노인의 초라한 행색과 매일 먹는 라면이 궁상 떠는 것이 아니라, 검약이라는 미덕으로 보였다. 그 극단적 대비가 아이돌 가수 보다 더 멋있게 느껴졌다. 건물 계약 전날, 그 노인이 꿈속에서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계약은 제3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동네 이름은 까먹었는데, 수유리 그 쯤이었던 것같다. 매수자와 매입자와 중개인이 약속 시간에 모였고, 중개인의 브리핑이 있고, 대망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매도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는데, 계약서의 이름을 보니 아는 이름이다. 초등학교 동창 녀석이 매도인이다.
딱딱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녹았고, 곁에 계시던 중개인들도 좋은 일이라며 축하해 주셨다. 우리는 30년 만에 만나서 반갑게 회포를 풀었다. 잘 사고 잘 팔았다는 느낌이다.
현재 그 건물에서는 샐러리맨 급여정도가 나오는데, 코로나 이후로 월세를 매꾸는 데 쓰인다. 월세를 받아서, 월세를 내고있다.
가게 사정 물어봐주지 않은 건물주가 야속하다고 했는데, 나 역시 한번도 세입자 입장을 물어본 적도 없고, 가끔 어려울 텐데 월세 깍아달라는 말은 안하네 스치듯이 떠올리고는 한다. 물어보아봤자, 앓는 소리 할 것이 뻔하기에 묻지 않는다.
그 건물주 노인은 검약 코스프레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돈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주변의 자산이 있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이 없다. 백만원도 없다. 들어오는 돈은 건물 대출, 아파트 대출, 보험료, 개인 연금, 이리저리 매꾸기 바쁘다.
'돈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욜로에 플렉스에 소확행에 짜잘하고 바쁘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