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폭 안긴다. 잃어버렸던 일부처럼 완벽하게 품에 안겼다. 이래서 아이는 신神의 선물이구나.
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변했다. 아침잠이 많은데, 스쿨버스로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짜증 만발이다. 머리를 스다듬으면, 으르릉 거렸고, 부드럽게 말을 걸면 빽,했다.
오늘 집에서 밥먹는 중이었다. 딸아이는 식탁에서 무언가를 엄마에게 졸랐다. 처음에는 헤헤 거리다가, 거절 당하자 분노했고, 끝내 통곡했다.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감정을 다 보여주었다. 점잖게 타일렀으나, 외간 아저씨 취급하는 말투에 나도 발끈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밥상 엎어버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난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거니와 육중한 6인용 테이블을 엎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부르르 떨리며,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는 전혀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는 혼낸다고 했는데, 내가 혼난 기분이다. 수저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의자에 앉아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그림 보러 갔다. 그 유명한 이건희 컬렉션이다. 유영국의 그림이 들어왔다. 도대체 지금도 의도를 알수 없는 저 그림을 어떻게 평생 그릴 생각을 했을까?
유영국의 아버지는 아들을 믿고 적극 후원해 준다. 미술하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했고, 집 한채 값,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하니 그 또한 내주었다.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았다. 부모의 믿음이 평생 한 길로 가는 씨seed가 된거다.
유영국은 슬하에 네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버지에게 받은대로 똑같이 아이들을 길렀다. 고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서 자라게 내버려두었다. 네 자녀는 모두 미국 유학을 갔고, 훌륭한 재원이 되었다.
난 아이때문에 발끈할때 스스로 생각해 본다. 아이 때문에 내가 화난 것인가? 혹은 내 스스로가 내 인생에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것을 아이에게 풀려고 하는 것인가.
유영국 그림은 1975년에 처음 팔린다. 그의 나이 60이 넘어서다. 이병철 회장이 미술관 만들겠다며 한국 작가의 그림을 100만원 주고 구매했다. 그것이 지금 삼성 콜렉션의 기초가 된다.
유영국의 그림은 100호 크기의 그림이 많다. 작가는 '내 그림은 평생 팔릴 일이 없다'고 자조했는데, 지금은 수도권 아파트 한채 값이다. 저 그림을 거실에 걸어놓고,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 김밥 몇개를 팔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