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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Nov 05. 2023

술을 끊는 방법.

장기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는중이다. 술이야기가 나온다. 장기하는 술을 좋아하고, 애주가이고, 다소 심하게 마시는 것 같다.


난 18살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29살에 그만 마셨다. 내가 술 마시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마실만큼 마셨다. 


술을 안마시게 된 계기는 지금 생각해도 우습기도 하고, 창피하다. 추운 겨울이었고, 회사 동기들과 횟집에 갔다. 난 연거푸 소주인지 정종인지를 마셨다. 뜨듯한 방바닥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 겨울 바람을 맞으니, 훽 정신을 잃었다. 


그 다음날이 토요일이었고, 같은 팀의 동기가 너 어제 여자들 앞에서 오줌 누었다고 했고, 눈앞이 깜깜했고, 그 뒤로 마시지 않는다.  


술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돈이 굳는다. 1년을 마시지 않으니까 돈이 쌓였다. 월급이 얼마되지 않았지만 돈이 남아돌았다.   2년을 마시지 않은날 EF 소나타를 구매했고 팀장은 내 차를 보더니, 진심으로 나를 다르게 보았다. 3년차 되던 해에 결혼했다. 술 끊은지 20년 되는 지금, 사람 만나면 밥도 사고, 차도 사고, 술도 내가 산다. 절대 그렇다. 이제 친구 아이들도 제법 자라서 용돈을 주어야 하는데, 현금 주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할수가 없다. 요는 나만 술 안마시면 돈이 나가지 않는다. 


물론 쉬웠던 것은 아니다. 내가 장사를 일찍 시작한 것은 회사의 회식문화가 싫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술 안마신다고 호통을 쳤고, 어떤 여자 직원은 내가 재미없다며, 앞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다른 남자로 바꿔달라고 했다. 


중국에 출장 갔을때는 현지 여행사 사장님이 나를 접대해 주셨다. 으리으리한 식당에 갔고, 극진하게 대접해 주셨고, 고량주를 권했다. 난 마시지 않는다고 했고, 그래도 중국에서는 첫잔은 마시는 것이 예의라고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상 마실수 없다고 했고, 그래도 한잔 정도는 마실수 있지 않느냐며 2시간 동안 첫잔을 권했지만, 끝끝내 마시지 않았다. 결국 그 출장에서 내가 얻은 것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승리감이었다. 


장사하면서도 사람 만날 일이 있는데, 화장품 사업할 때였다.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였고, 회장님이 동대문 상권을 담당하는 나를 불러서 독대의 기회를 주셨다. 나에게 기대가 많고, 할수 있다며 격려해주셨다. 자, 그런 의미에서 소주한잔 마시라고 권하셨지만, 처음에는 안마신다고 말씀 드렸으나, 그래도 한잔 정도는 괜찮다며, 어른이 주는 것은 마셔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난 마시지 않았다. 약간 언성이 높아지면서, 자자 그러지 말고, 한잔....했으나 난 안.마.신.다.고.요. 했다. 회장님은 질렸다는 듯이 허 하셨다.  


최근에 술을 끊은 사람을 보았다. 나이 50 넘어서 술을 끊은 것이다. 대단한 독기다. 경제적인 이유다. 짠돌인데, 술만 마셨다하면 호기롭게 카드를 긁었고, 사람들은 그를 은근 호구로 여겼다. 술 마신 다음날 카드 명세서를 보면, 가슴이 찢어졌다. 이런 자괴감에 못 견디고 술 끊겠다고 다짐하고 2년 넘게 단주중이다. 돈을 아끼고 경제적인 자유를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술까지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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