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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Jul 29. 2024

재일마이너리티 여성의 역사 다시 쓰기

책 『보통이 아닌 날들』

 『보통이 아닌 날들』은 일본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온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베트남, 필리핀 출신 22명의 여성이 가족사진을 매개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펴낸 책이다. 그들에게 가족사진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상과 사건의 기록”이다. 재일조선인 여성단체인 미리내는 사진을 통해 재일 마이너리티 여성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가족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재일조선인 여성」, 「피차별부락 여성」, 「아이누ㆍ오키나와ㆍ필리핀ㆍ베트남 여성」 등 3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록된 역사에 담지 못한 재일 마이너리티 여성사를 그들의 시선에서 재조망한다.

재일 마이너리티 여성들은 민족적 차별뿐 아니라 계급과 성차별, 경제적 소외 등 다양한 억압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얽힘으로 구성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p.27
재일조선인은 수 세대에 걸쳐 일본에 살아왔지만 '표현'의 세계에서는 늘 배제되고 수탈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재일조선인은 '표현'의 현장에서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으며 그 사이 일본인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조선인상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정체성에 상처를 입히는,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인의 이미지였다.
나에게는 자이니치 여성으로서의 미래상이 하나도 없었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는 과정은 늘 고독했다. 그래서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앞 세대 여성과 현 세대 여성의 생각과 살아 온 삶을 세세히 보여주고 싶다.


p.58
또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선의 악기를 연주하거나 재일조선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러 갈 때에도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상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는 일상생활에서 치마저고리를 입는 일은 그 자체가 스스로 재일조선인임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p.74
재일조선인이 역사의 뿌리, 특히 가족사를 되짚을 때, 남성의 경험이 기준이 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때부터 왜 할아버지만을 기준으로 삼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p.109
철이 들 무렵부터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받은 두 가지가 있다.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점과 아빠가 피차별부락에서 일한다는 점이다. (...) 엄마는 왜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국가에 살러 온 것일까. 왜 나는 엄마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도 말하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p.112
병이 악화되면서 화장과 옷차림도 어색하게 변해 나는 엄마를 점점 피하게 되었고 옆에서 걷는 것조차 싫어하게 됐다.
사람들은 엄마의 이상한 행동이 마음의 병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p.142
동시에 나의 출신지인 피차별부락을 둘러싼 차별이 일본 사회에 온존하는 가족 중심의 호적 제도로 인해 되풀이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는 호적 제도를 전제로 하는 혼인의 틀 속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비혼 상태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p.168
"당신의 아이도 언젠가는 결혼 차별을 당해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한 채 자란다면 차별을 받았을 때 어떻게 자신을 지키겠습니까. 최악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소중한 내 자식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편이 부락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결혼했지만, 내가 부락 문제를 배울 필요는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부락민과의 결혼이 나를 차별의 단상 위에 세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락민인 남편의 처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 자신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p.238
나의 일본어가 서툰 이유를 변명하기 위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안의 오키나와를 멸시하는 잠재 의식을 냉철하게 직시하기 위해서다. 본래 이곳에는 일본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고, 그 문화를 다 알고 있다고 여기며 자랐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 한편에 오키나와는 뒤처진 곳, 열등한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이것이야말로 식민지주의의 구현이며 내 안에 식민지주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보통이 아닌 날들

미리내 엮음 | 양지연 옮김 | 사계절, 2019
분야/페이지 | 인문 > 교양 / 312쪽
#재일조선인 #복합차별 #재일마이너리티     

책계정 | @boi_w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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