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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재 Jul 19. 2017

할리우드의 성·소수자 차별은 바뀔 수 있을까?

통계로 보는 할리우드의 성·소수자 차별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출연진, 배역, 줄거리, 제작진 구성에서 성과 인종 등에서 차별적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영화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셸>에서 유색인 역할에 백인들을 캐스팅하는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이 문제가 됐다. 지난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아카데미의 백인 남성 편향을 지적하는 ‘#OscarsSoWhite’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크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더디다. “말은 많은데 실천은 거의 없다.” 미국 연예 산업에서 젠더·인종·성적 취향·장애 여부에 따른 차별을 조사한 ‘아넨버그 보고서’는 할리우드의 현실을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유니버셜시티에서 2월28일 열린 영화 ‘공각기동대’의 특별 팬시사회의 모습. Photo by Frazer Harrison/Getty Images


■통계로 보는 할리우드의 성·소수자 차별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가주대(USC)의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저널리즘 스쿨’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과소 대표되고 있고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들은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보고서는 2007~2015년(2011년은 제외) 사이 개봉한 흥행 수익 상위 800개 영화를 조사한 결과를 담고 있다. 조사 대상 영화 전체에서 대사가 있는 인물의 수는 3만 5205명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흥행 상위 100위에 오른 영화를 기준으로 대사가 있는 4370명의 인물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1.4%에 불과하다. 2007년 이후 이 비율은 큰 변화가 없다. 이 영화들에서 여성이 주연 혹은 공동 주연인 경우는 32%였다. 여성들이 영화 속에서 옷을 벗는 비율은 30.2%로 남성들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여성은 극 중 비중이 작고, 섹스어필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사가 있는 배우 중 여성의 비율은 30% 전후를 오가고 있다. 조사 대상 영화 전체에서 대사가 있는 인물의 수는 3만5205명이다. 출처:아넨버그 보고서

인종적인 면에서도 차별이 심하다. 2015년 기준으로 73.7%의 등장인물이 백인이었고 흑인은 12.2%, 라틴계는 3.9%, 아시아계는 3.9%였다. 중동과 미국 인디언, 알래스카 토착민, 하와이·태평양 원주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1% 이하였다. 100편의 영화 중 흑인이 주연 또는 공동 주연을 한 영화는 9편, 라틴계의 경우 1편이었다. 아시아계 배우가 주연인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100편의 영화 중 흑인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장인물이 있는 영화는 17편에 그쳤다. 40편의 영화에서 히스패닉계 등장인물이 없었고 아시아계 등장인물은 49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2015년 기준 대사가 있는 배우들의 인종별 비율. 출처:아넨버그 보고서

스크린 밖으로 시선을 돌려도 상황은 비슷하다. 800편의 조사 대상 영화에 모두 886명의 감독이 있었지만 여성은 오직 4.1%에 그쳤다. 흑인 감독은 5.5%, 아시아계 감독은 2.8%에 그쳤다. 같은 인종 내에서도 여성 감독의 수는 극소수였다. 2015년 기준으로는 107명의 감독 중 오직 4명만이 흑인 혹은 아프리카계였다. 6명은 아시아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이었다. 연예 산업에서의 성·인종차별은 곧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포브스가 집계한 올해 ‘세계 최고 수입 명사’ 100인 중에 여성은 16명이었고, 유색인종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그나마 대부분은 운동선수들이었다. 

조사 대상에 모두 886명의 감독이 있었지만 여성은 오직 4.1%에 그쳤다. 흑인 감독은 49명(5.5%), 아시아계 감독은 25명(2.8%)에 그쳤다. 출처:아넨버그 보고서

성소수자(LGBTQ)들은 더 심한 차별을 받는다. 아넨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성소수자 등장인물은 전체 4370명 중 32명에 불과하다. 게이 19명, 바이섹슈얼 5명, 레즈비언 7명, 트랜스젠더 1명씩이다. 성소수자 등장인물이 전혀 없는 영화는 100편 중 82편이었다. 성소수자들의 존재감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다른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미국 미디어 속 성소수자의 차별 문제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 GLAAD가 5월 2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개봉한 주요 영화 125편 중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영화는 18%에 그쳤다. 또한 125편 중 유색인종이 등장하는 영화는 20%에 불과했다. 성소수자나 유색인종이 영화에 출연하더라도 이들 영화 중 43%에서 출연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2015년 성소수자 등장인물은 전체 4370명 중 32명에 불과하다. 게이 19명, 바이섹슈얼 5명, 레즈비언 7명, 트랜스젠더 1명씩이다. 출처:아넨버그 보고서

■다양성이 경제적 성과에도 영향

아넨버그 보고서는 혹평했지만 할리우드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실천은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 도덕적 정당성과 함께 경제적 이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성이 주인공인 ‘원더우먼’은 4억 5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고 흑인 남성이 주인공인 ‘겟 아웃’은 2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흑인을 공동 주역으로 한 TV 드라마 ‘디스 이즈 어스’(This Is Us)나 ‘블랙키시(Blackish)’는 높은 작품성으로 호평받았다. 

다국적 연예 매니지먼트사인 ‘창조적 예술가 협회’(Creative Artists Agency·CAA)에서 에이전트로 일하는 크리스티 하우베거는 포브스에 “다양성은 다양한 경험, 다양한 배경, 다양한 관점에 나오는 혁신을 가져온다”며 “(다양성을 높이는 일은) 도덕적 측면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사업상의 기회가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나온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히스패닉과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시아인들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38% 이지만 극장을 자주 찾는 사람들의 49%를 차지한다. 보고서는 이들이 자신들과 문화적, 인종적으로 비슷한 인물이 나오는 영화를 더 본다고 설명했다.

미국영화협회에 따르면 히스패닉과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시아인들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38%이지만 극장을 자주 찾는 사람들의 49%를 차지한다. 출처:미국영화협회


■새로운 목소리를 담으려는 매니지먼트사들

영화산업에서 젠더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웹진 ‘여성과 할리우드’의 설립자 멜리사 실버스타인은 포브스에 “(영화 제작) 후원자들은 누가 대본을 만들고 감독하고 영화에 출연하는지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방안을 활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할리우드의 상위 3개 연예 매니지먼트사인 CAA와 UTA(United Talent Agency), WME(William Morris Endeavor)는 배우와 감독, 대본 등 콘텐츠 제작의 전후 과정은 물론 그들 회사 자체의 직원 채용 과정에서도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실천에 나섰다. 

CAA의 경우 지난해 모든 영화 제작사와 TV 방송사를 찾아다니며 여성과 유색인종인 감독과 작가들을 소개하는 ‘로드쇼’를 시작했다. 하우베거는 “우린 백인 남성이 아닌 40명의 감독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여성 감독을 채용하도록 만들 순 없지만 그들을 못 봤다고 말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내 여성 감독의 42.4%, 흑인 감독의 36%는 CAA에 소속되어 있다. 이 비율은 미국 내 매니지먼트 회사 중에서 가장 높다. WME의 경우 아시아인 감독의 54.6%가 속해있다. CAA는 매년 여름 하루 동안 작가 훈련 캠프를 여는데 여기에 여성과 다문화 출신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CAA는 이런 카메라 뒤에서 이뤄지는 다양성 제고 노력이 카메라 앞에서는 배우들의 다양성 증가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UTA의 경우 신규 채용 인원의 최소 50%를 여성과 유색인종으로 채우고 있다. WME 역시 비슷하다. CAA는 인턴 직원을 채용하면서 여성의 비율을 절반으로, 인종별 비율은 인구 비율에 따라 정했다. UTA의 상무이사인 데이비드 크래머는 “사람들은 그들의 세계가 작품에 반영되길 원하며 창작 공동체는 이런 요구를 실현함으로써 풍요롭게 될 것이다”라며 “이런 확장된 기회를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창의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WME의 TV 담당 에이전트로 일하는 테레사 강은 “다른 시각과 배경을 갖고 있는 에이전트들은 다양한 이야기꾼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며 “한국계 미국인인 내가 한국계 여성 대본 작가들의 3분의 2를 담당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은 “미국이 다양해질수록,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무이며 다양한 창작자들로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영리한 일이다”라며 “새로운 목소리에 다가가지 않는다면 우린 유행에 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카데미의 변화

아카데미상을 수여하는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AMPAS)’는 올해 기준으로 7000명 이상의 영화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카데미는 ‘#OscarsSoWhite’ 운동과 함께 다양성을 높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해 683명에 이어 지난달 28일엔 57개국에서 774명을 신규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2년 연속 최대 규모의 신규 회원을 받아들였다. 

이자벨 위페르(왼쪽)와 극작가, 감독인 배리 젠킨스가 2월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2년간의 다양성 ‘수혈’로 전체 여성회원의 비율은 25%에서 28%로 증가했다. 올해의 경우 전체 17개 분야 중 배우, 캐스팅 감독, 의상 디자이너, 디자이너, 다큐멘터리, 행정부문, 영화 편집인 등 7개 부분에서는 남성보다 여성 신규 회원이 더 많았다. 전체 회원 중 유색인종의 비율은 같은 기간 8%에서 13%로 늘었다. 영화 ‘겟 아웃’의 감독과 각본을 맡은 조던 필레와 ‘문라이트’의 감독 배리 젠킨스도 여기에 포함됐다. 


아카데미의 변화는 2013년 아카데미의 35번째 회장으로 선출된 셜리 본 아이작이 주도했다. 그는 회장직에 오른 첫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세 번째 여성이다. 그는 백인 남성 위주의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2015년에는 ‘A2020’이라는 새로운 다양성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나이와 성, 인종, 국적, 관점의 차이에 따른 차별이 없는 아카데미를 만든다는 목표에서다. 여기에는 영화 산업에서의 차별적 관행과 고용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이 포함됐다.

아카데미는 이런 변화를 ‘작은 발걸음’(small step)이라고 표현했다. 영화계는 아카데미의 변화를 반기면서도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화계는 아카데미의 신규 회원 중 여성과 유색인종의 비율이 각각 지난해 46%, 41%에서 올해엔 39%, 30%로 줄어든 것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웹진 ‘여성과 할리우드’의 뉴스 편집인 래이첼 몽펠리에는 “진보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아카데미가 늙은 백인 남성들 이외의 사람들의 수를 늘리려는 시도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라고 평가했다. 

신규 회원 영입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29일에는 아카데미 이사회 선거가 있었다. 선거 결과 전체 54명(17개 분야별로 3명의 이사가 선출된다) 중 21명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새롭게 꾸려진 아카데미 이사회는 7월 중 아이작의 뒤를 이을 새 회장을 선출한다. 다양성을 높이려는 아카데미의 시도는 이 결과에 따라 또 한 번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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