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서른 하나
지금껏 사귄 남자 중 연하는 없었다. 동갑 한 명을 제외하면 죄다 연상이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연하는 내게 그린라이트였다. 첫 만남에 책방 투어하고 싶단 날 따라왔고, 망원동 한강공원을 걸었고, 다음에 뮤지컬을 같이 보자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와 난 그에게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성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3살 터울 남동생이 있어서일까. 나보다 어린 남자를 만나면 이상하게 과장되게 누나인 척을 한다. 직장에서든 사적인 자리에서든. 혼자 말을 놓고 괜히 어른인 척 군다. 얼마 전 한 살 어린 친구들과 미팅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들을 동생처럼 바라보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최악이다.
연상 취향은 동성 관계에도 이어진다.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는 이들은 죄다 언니들이다. 경주, 강화도, 제주도, 파주 여행 등 올해 여행은 모두 언니랑 갔다. 일하며 연락하는 이들도 언니, 가끔 만나 편하게 얘기하는 것도 언니다.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동갑이 아닌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본격적으로 언니들에게 붙었다. 언니들과 있으면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챙기지 않아도 괜찮았다.
연상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K-장녀라서인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성공하고 모범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예쁘고 날씬하고, 동생 잘 보살피고, 부모님께 순종적이며 요리도 잘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코리아 장녀라서?
나도 모르게 쌓여온 책임감과 부담감이 나보다 일 년이라도 더 산 연상과 있으면 줄어들어서일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이유를 알 수 없는 취향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