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멘 Mar 03. 2022

당신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개 같은 서른 하나

 규모가 작은 매체에서 일하다 보면 서러운 순간이 자꾸 생긴다. 공들여 취재한 기사가 ‘언론계에 따르면’이란 무책임한 수식어와 함께 다른 매체에 똑같이 나가고, 힘들게 취재했다 생각했는데 조회수가 형편없을 때. 주로 내 열심이 빛을 보지 못할 때 화가 난다.    

  

 이직 시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건 이 때문이다. 다른 매체는 십여 명이 커버하는 출입처를 3명이 막아내는 건 꽤 힘든 일이다. 심층 취재하고 싶어도 터지는 일을 막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 버린다. 하루에 4~5개씩 취재 기사를 쓰다 보니 2년이 지났고, 그런 하루가 쌓이다 보니 지금 이곳이 너무 좋아도 내가 열심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경력 지원서를 쓰며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나의 강점’이었다. 신입 지원서를 쓸 때도 가장 고민했던 부분인데 시간이 지나도 어려운 항목이다. 내 강점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실함’이다. ‘성실함이 최고의 무기다’, 성실한 일개미 등 표현만 달라졌을 뿐 결국 모두 성실함이었다.     

      

   # “그래, 끈질긴 게 좋은 거야”
네 살 무렵, 다니던 교회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부모님은 반사적으로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우는 애는 누군지 몰라도 울린 애는 우리 애라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잘 놀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를 물던 전,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애로 유명했습니다. 이 집 저 집 사과하러 다니느라 과일값이 꽤 들었다던 어머니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겼다고 합니다. “그래 끈질긴 게 좋은 거야”라고. 다행히 끈질긴 태도는 지속했습니다.  (과거에 작성한 자기소개서 일부 발췌)        

             

 이 밖에 나의 성실함을 증명할 에피소드는 정말 많다.

2년 동안 맡았던 출입처에 ‘김 기자는 매번 자리를 지키는 한 명’으로 인식돼있었고, 필라테스 학원에 있는 러닝머신이 예약제로 바꾼 뒤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간 덕에 ‘이달의 1등’에 등극했다.    

  

 하지만 성실함이 곧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때론 내세울 게 성실함 뿐이라 속상할 때도 있었다. 사회생활할수록 성실함보다 영리하게 나를 어필하는 게 필요했다. 부지런함보다 ‘잘’하는 걸 원했고, 과정보다 결과물을 어떻게 포장하는지가 중요했다.      


 문제는 내가 이를 알면서도 몸에 밴 성실함으로 경쟁해나간다는 거다. 빠른 길이 있어도 ‘누군가는 알아줄 거야’라는 기대감으로 계속 그 길을 간다. 기명 기사 10개를 추리기 위해 지난 2년간 써온 기사를 훑는다. 무려 1,777건이다. 나의 성실함을 나타내는 지표에 코끝이 찡해진다.      


 아무래도 나 계속, 어리석지만 성실함을 내세우며 살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작가의 이전글 ESFJ vs ISF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