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프제를 배신한 엣프제
ESFJ-T. 사교적인 외교관. 인기쟁이. 인구의 대략 12%를 차지하는 유형으로 ‘치어리더’ 형이다. 하나씩 뜯어보면 외향적인(E), 현실주의(S), 감정적(F), 판단· 계획형(J)이다.
여러 번 MBTI 검사를 했지만, 매번 다르게 나오는 부분이 있었으니 맨 앞자리였다. 기분이 좋거나 활발할 땐 외향형 E가 나오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일에 치여 힘들 땐 내향형 I가 나오는, 외향형과 내향형이 55 대 45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성격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MBTI를 얘기하다가 나만 I로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E에서 I로 가기까지는 환경의 변화가 컸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여기저기 욕먹으며 말다툼이 일상이 됐다.
매일 좋은 말을 들은 쌀은 짜증 섞인 말을 들은 쌀보다 덜 부패한다는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내 처지와 닮아 있었다. 매일 안 좋은 사건을 보고 취재하고 나누니 칭찬이 고팠고 나도 모르는 사이 쭈글쭈글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교회 집사님은 “기자는 좋은 사건만 써야지 남 비판하고 비평하는 얘기만 쓰면 못 써”라고 말했다. 명절에 집안 어르신들을 만나면 “김 기자, 이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은 뒤 자기 생각과 다르면 “자기주장이 강해, 그러니 기자 하지”로 끝나는 대화들. 분명 스쳐야 할 소리인데 귀에 맴도는 걸 보니 내 속에 고민이 짙어졌나 보다.
필요 없는 대화는 잘하지 않다 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말수가 줄어들었고,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하루치 대화를 하고 나면 침묵이 편했다.
하지만 내 주변 ‘잇프제 동료’(실제 단톡방 이름)들에겐 미안하지만 난 E로 시작하는 엣프제가 좋다. 어딜 가든 끅끅거리며 웃고, 구석보다 중앙을 좋아하고, 모임마다 기웃거리고, 마가 뜨는 게 싫어 쉬지 않고 입을 여는 나를 되찾아야겠다.
내가 좋아하던 활기찬 내 모습으로, 나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