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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Mar 02. 2022

경쟁사회 속 우리가 하나가 돼야 하는 모순

음악 듣고 글쓰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 빛이 내려오고, 지휘자의 지휘봉 끝에 시선이 닿는다. 그의 손짓 하나에 오보에가 나오고, 플롯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나면, 수십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하나인 듯 소리를 낸다.

 오늘의 스포트라이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꽂힌다. 백여 명의 연주자들이 피아니스트가 돋보이도록 배경음을 만들어주고 조화를 맞춰간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조화를 이루어 한 곡을 소화해내고 나면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지곤 하는데 불쑥 의구심이 든다.

 경쟁 끝에 살아남은 우리가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지 청중들은 알까. 어린 시절 오빠가 다니던 음악학원에서 플롯을 처음 알게 됐다. 어린 마음에 은색에 반짝거리는 그 악기가 탐이 났다. 처음으로 악기에 흥미를 가진 어린 딸이 신기했는지 아빠는 그 길로 내게 40만 원짜리 야마하 플롯을 쥐여줬다. 한 달 동안 악기는 입에도 못 댄 채로 호흡법만 배운 난 싫증을 냈지만, 엄마는 악기값이 아깝다며 한 곡을 완벽히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는 배워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그 한 곡을 너무도 잘 소화해냈고, 한 선생님의 눈에 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주변의 칭찬 속에 머리가 띵해도 수없이 플롯을 불었다. 처음 내 목표는 콩쿠르 우승이었다. 그다음 목표는 예술중학교 입시였고, 다음은 고등학교, 그다음은 대학교였다. 매 순간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친구들보다 내가 돋보여야 했다.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하나의 단계를 통과했다고 생각하면 다음 넘어야 할 계단이 눈앞에 놓였다. 매달 매년 그 퀘스트를 하나씩 깨나 갔다. 첫 시작은 음악이 좋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음악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계속하게 됐다. 주어진 단계들을 밟아나가면 되니까 단순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자리 잡은 곳이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 모순적이게도 난 음악을 즐기지 못했지만, 재능이 있었고 음악이 너무 좋다는 동료들 앞에 적당히 음악을 좋아하는 척하며 그들을 이겨왔다.

오케스트라에는 내로라하는 선배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경쟁자의 악보를 훔쳐서 이겼다는 소문이 도는 선배, 대기업 다니는 아버지 덕분에 실력도 안되는데 음악회를 자주 연다는 선배, 이기기 위해 잠을 안 잔다는 독기 품은 선배까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사정없는 연주자들은 없었다.

그랬던 우리들이 하나의 곡을 연주하며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매일 모여 노력한다. 튀지 않는 하나의 화음을 맞추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 다시 노력하는 모습이라.

 연주가 끝나고 박수갈채를 받은 피아니스트가 무대를 떠난다. 다시 우리는 다음 연주를 위해 모여야 한다. 우리가 아닌 한 명의 연주자를 빛내주기 위해, 각자의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해온 우리가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20년 남짓 길러온 태도를 버리고 조화를 위한 태도를 다시 익힌다. 서른이 넘어서.


20220227

독소 모임에서 참여한 첫 글쓰기 모임에서 한 시간 만에 작성한 글이다.
주말 저녁 온라인으로 같이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는 게 상상이 안됐는데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같은 음악을 듣고 누구는 이별을, 경쟁을, 여행을, 죽음, 희망찬 분위기를 표현했다. 글쓰기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표현 행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경험에 갇힌 글이 나오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음악은 내가 가본 길이 아니라 단순하게 표현했는데, 음악 하는 사람들이 보면 웃을 것 같아. 상상력을 키우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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