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지망생 시절, 내 주변 팔 할은 손석희를 존경했다. 손석희를 프사로 해놓은 이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나 역시 그가 전해주는 뉴스를 신뢰했고 앵커멘트를 받아 적었다. 하지만 미디어 비평지 기자가 된 이후 일부러 거리를 뒀다. 동경해오던 언론인들의 찐 면모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더는 언론인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게 됐다.
손석희의 <장면들>이 나왔을 때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기사화할 만한 내용이 있을까 와 그의 책이라면 응당 사야 한다는 팬심. 책이 출판된 지난해 11월 경 많은 매체에서 그의 책을 다뤘고 자연스레 책상에 꽂아뒀다. 쉴 때 최대한 일과 거리를 두는 편인데 새 책인 상태로 자꾸 눈이 마주치는 이 책을 더는 미룰 순 없었다.
그가 꼽은 장면들, 세월호 태블릿 PC 대통령 선거 미투 등, 을 쫓아가며 그가 기록한 시절(2017년 이전)에 내가 기록자로 일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이상한 감정이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을 때마다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 저널리즘적 고민들을 미디어비평지 기자인 나는 얼마큼 소화해내고 그 사안들을 쫓아가고 기록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떠한 고민에서 장면마다 이 같은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어 어느새 배움의 자세로 밑줄을 치고 있었다.
장면 2. 총 521일간 세월호 곁에 머물고 비춘 시간들에 대해 그는 "언론이 단지 뉴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시간들"이라며 "굳이 어젠다 키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좀 더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다"(p.70)고 말한다. 또한 "적어도 논리적으로 우리가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한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런 언론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면 된다고 생각했다"(p.71)고 고백했다.
장면 3. 박근혜를 탄핵시킨 태블릿 PC 발견 보도 과정에 대해 "우리는 이미 확실한 '팩트'를 가지고 있었고, 상대방의 반론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단계별로 그 팩트를 풀어 반론에 반론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우리로선 한꺼번에 풀어놓을 경우 생기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했다"(p.95)며 당시 보도 방법을 소개했다. 이 부분에서는 언론인 지망생 시절 뜨거운 감자였던 '정유라 체포를 위해 JTBC 취재진이 덴마크 경찰에 신고한 건 언론윤리에 어긋나냐'는 문제제기에 대한 손석희의 고민도 담겼다.
대선이 끝났고 곧 정권이 바뀐다. 안철수 후보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손석희 진행자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4자 토론에 불참 의사를 표했다. 얼마 전 윤석열 당선인은 한국기자협회 주최 토론회에 진행자의 편향성을 문제 삼아 어깃장을 놓았다. 과거가 이렇게 반복되는구나 싶어 소름이 돋으며 정신을 반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해야 한다. 한 시대의 감시자로 일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런 의미에서 책 <장면들>은 시의적절한 참고서였다.
+ 내가 쓴 JTBC 단독보도 부활 기사가 책에 실렸더라. 작지만 부지런히 변화의 순간을 기록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정치 사회적으로 오랜 억압구조, 혹은 모순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다룰 수 있는 것이 옳은 저널리즘이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한다.... 언론은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진실과 거짓, 공정과 불공정, 견제와 옹호, 품위와 저열 사이의 담장.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자기부정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는 언제나 유효하다.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