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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Mar 18. 2022

대책 없지만 가슴 떨리는 선택을 하고 싶어

서른두 살의 책장 8_모순

모두들 그런 콘텐츠 하나 정도 있지 않나. 유행 지나 우연히 보게 됐다가 뒤늦게 빠진 콘텐츠.

당장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데 모두가 '이제야 그걸 봤냐'라고 반색하는 콘텐츠.

양귀자의 책 <모순>이 내게 그랬다.


책모임 끝난 술자리에서였나, 대화 중 친구는 이 책을 선물로 줬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선물로 줄 정도인가. 반신반의하며 책을 폈고, 오랜만에 앉은자리에서 완독 했다. 다 읽고 나서 급하게 인스타 스토리에 <모순>을 본 친구들을 찾았다가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책 3개 중 하나야', '대학생 때 읽었는데 진짜 좋았어', '그걸 지금 읽었어? 너무 좋지'... 나만 몰랐던 거였다.


소설 <모순>은 간단히 요약하면 결혼 적령기인 스물다섯(1998년 쓰였으니) '안진진'이 '김장우'와 '나영규' 중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내용이다. 부연 설명하자면 '안진진'의 엄마와 쌍둥이 이모의 결혼 이후 180도 달라진 삶을 지켜봐 온 이야기이며, 가진 건 없지만 안진진을 가슴 뛰게 만드는 김장우와 계획적이고 가진 게 많아 안진진으로 하여금 기대게 만드는 나영규 중 누구를 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내용이다.


처음 책을 막 읽었을 때 내 머릿속은 온통 '안진진은 이모의 자살을 겪고 왜 나영규를 선택했을까'로 가득 찼다. 가진 게 많고 계획적인 이모부를 만나 평안한 삶을 누린 이모는 재미없고 불행하다며 목숨을 끊는다. 나영규를 만나는 안진진의 모습도 이와 같다고 느꼈는데, 이모의 죽음 이후 안진진은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나영규를 택한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P.296)

독서모임 친구들은 대부분 김장우를 선택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추억까지 미리 디자인하고 있는 남자, 현재를 능히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어 먼 훗날의 회상 목록까지 계산하고자 하는 그의 도도한 힘이 나에게는 조금 성가셨다"(p.75) 식으로 서술된 나영규가 든든하긴 했지만 피곤했다. 또한 안진진은 나영규 앞에서는 복잡하고 부끄러운 가족사를 다 나열하는 반면, 김장우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난 안진진이 술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김장우에게 아버지와 닮아있는 모습을 보인 데서 확신했다. 안진진은 김장우를 사랑한다고.


한 친구는 김장우가 안진진에게 몽상("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p.195)이었고, 이모의 몽상과 닮아있기에 안진진이 나영규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는 안진진이 나영규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기대는 것 역시 안진진은 모르는 사랑의 감정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꾸며진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사랑이고, 솔직한 모습을 나누는 것 역시 사랑이기 때문이다.


<모순>을 7년 전에 읽었던 친구는 지금 다시 이 책을 보니 이전과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고, 공감되는 부분이 달라졌다고 했다. 서른 초반에 이 책을 처음 접한 나의 선택은 김장우이고 싶다. 아직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조건이나 안정보다 가슴 떨리는 이를 만나고 싶다는 대책 없는 순진함이 옳다고 믿어보고 싶다. 아직은.


이모와 엄마의 모순, 아버지와 동생 '안진모'의 모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건 조금 더 커서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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