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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Mar 18. 2022

코로나 확진이 가져다준 여유

이젠 ISFJ 차례인가, 일주일 코로나 격리기

3월 12일 지난주 토요일 저녁부터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침하는 순간 코로나 확진 느낌이 온다'는 친구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목부터 긁어 올라오는 기침은 예사롭지 않았고, 열이 나기 시작하자 불안감에 잠을 꼬박 설쳤다.

아침부터 자가 키트를 사다 달라고 요청한 뒤 테스트를 해보니 '음성'이었다.

하지만 일요일 내내 정신을 못 차리며 기침하는 나를 두고 아빠는 '예사롭지 않다'며 소독제를 뿌렸다.

사람에게 소독제를 뿌리다니...!!


14일 월-자가격리 첫째 날  


결국 월요일 아침,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자 미열에 글자를 온전히 읽기 어려워 휴가를 냈다.

아침에 다시 해본 자가 키트 검사 결과 선명한 줄 아래 희미한 한 줄이 모습을 드러냈고, 집 근처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오전 9시 오픈이어서 15분에 갔는데 이름을 올리고 1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PCR 검사 대신 신속항원검사도 양성을 인정해주기로 한 첫날이었다. 이름을 올려두고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와서 순서를 건너뛰었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안 그래도 미어터지는 공간이 아수라장이 됐다.

내 차례에 세 명이 같이 들어가 차례로 코를 찔렀는데 눈을 감지 말고 고개를 꺽지 말라고 하니 눈물이 났다.

"세 분 모두 양성이네요".

서로 처음 보는 셋이서 나란히 확인증과 처방전을 받고 진료비 5천 원을 냈다.

약국에서 돈을 내지 않고 약을 받아왔고, 일회용품을 잔뜩 구비했다. 코로나 환자 전용, 즉 나만 쓰는 안방 화장실을 만들었으며, 내가 만난 주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래 봤자 직장, 친구 몇 명. "푹 쉬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란 대표님의 말에 오랜만에 맘 놓고 쉬기로 했다.

친구  하나가 미리 코로나를 겪어본 선배로서 위로해준다며 무려 노티드 도넛을 사다 줬다.

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을 보냈다.

낮에는 괜찮았는데 저녁이 되자 기침은 심해졌고 미열은 떨어지지 않았으며 밤 새 기침하다 잠에 들었다.


15일 화 - 자가격리 둘째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오른쪽 코가 막혔다. 늦잠을 잤는데 일어나니 10시 30분.

후배의 업무 관련 전화가 와서 받으니 목소리를 낸 나도, 목소리를 들은 후배도 서로 깜짝 놀랐다.

목소리가 코맹맹이 소리에 묻혀 완전히 가 있었다. 그렇다, 콧물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두루마리 휴지를 방안에 배치하고, 이대로 미각과 후각을 잃으면 어떻게 되나 고민했다. 입맛 떨어지기 전에 구비해둔 과자를 먹어야겠단 생각에 닭다리 과자 한 봉지를 뜯었다.

나 때문에 재택을 하게 된 동생은 짜증 반  놀림 반으로 내 방 밖에서 유난을 떨었지만, 점심을 야무지게 챙겨줬다. 반찬에 김까지 감사할 따름이다.

무료할 것 같아 주문한 책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가 다른 책들보다 먼저 도착했다.

하루 종일 읽다가 잠들다가 읽다가 잠들다가 유튜브 보다가 잠들다가 페이스북 보다가 잠들었다.

이 정도 온몸을 다 사용해 기침을 하면 살이 빠질 것 같은데 몇 평 안 되는 방 안에서 움직임을 봐서는 찔 거 같다. 아무튼 둘째 날까지 나는 많이 아파서 울었다.

우습게도, 나와 비슷한 시기 격리된 ISFJ 친구를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지금까지 코로나 확진 안 되면 인간관계에 문제 있는 거라는 기사가 나오던데, 이제 ISFJ 차례인가 보다고 서로 농담을 건넸다.



16일 수 - 자가격리 셋째 날


입과 목이 말라 눈을 떴다.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 오랜만이다. 더 잘까 싶었지만 더는 못 참겠어서 일어나 물을 들이켰다. 엄마가 야무지게 챙겨준 파운드케이크에 계란 토마토 볶음과 사과, 바나나를 배불리 먹었다.

미뤄뒀던 브런치를 썼고 배송 온 책 <불편한 편의점>을 완독 했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기침에 계속되는 미열이 나를 괴롭게 했지만, 그래도 나름 미뤄둔 독후감을 썼고 책을 한 권 완독 했다는 뿌듯함이 자리했다.

틈틈이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를 보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느리다. 사기꾼 애나의 명품 컬렉션을 보려고 시작한 콘텐츠인데 어느새 애나를 취재하는 기자로부터 취재 스킬을 배우고 있었다. "사실만 놓고 보면 여기서 사기꾼은 당신이거든요. 당신 쪽 얘기를 듣지 않으면 이렇게 기사를 쓸 수밖에 없어요. 이게 싫다면 당신이 나는 걸 얘기해줘요". 상대로 하여금 입을 열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유튜브는 더 이상 볼 게 없는 수준. 그래서인지, 좀 외로웠다.


17일 목-자가격리 4일 차


와 씨. 보통 3일까지 아프다던데 왜 난 4일 차까지 아프냐.

오늘도 바싹 마른 목 때문에 일어났더니 오전 9시. 씻고 요구르트랑 딸기를 먹었다. 어제 엄마한테 부탁해 쟁여놓은 귤이 참 맛있다. 아침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졸리고 열이 나서 줄곧 침대에 누워있었다.

책 <장면들>을 조금 읽다가 마라탕을 시켜먹었다. 첫 배달음식이다. 누구는 미각을 잃는다던데 내 미각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대신 심장이 아팠다. 기침할 때마다 크게 흔들리는 폐, 가슴, 심장 부위가 아팠다. 기침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도 숨이 차고 아팠는데 '흉통이 코로나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든든히 먹은 점심 덕에 저녁은 가볍게 고구마랑 참외를 먹었고,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추워 줄곧 창문을 닫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일을 쉰 지 나흘 째인데 이제야 나를 찾는 외부 연락을 받으며, 문제없이 돌아가는 회사를 보며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뭐하러 분단위로 아득바득 살았나' 싶기도 했다.

아냐, 그래도 손석희의 <장면들>을 읽으며 복귀하면 재지 말고 열심히 뛰어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어, 정신 차리자고!


18일 금- 자가격리 5일 차


약을 때려 넣고 있다. 그래서 꿀잠자나. 평소에는 운동을 하고 자도 개운하지 않았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든다. 낮에 실컷 잤는데 밤에 또 잘잔다. 오늘 아침엔 8시에 일어났다. 역시 입과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갈증에 일어났다. 코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지만 흉통은 정말이지... 후유증 남을까 두려울 정도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나는 달리기도, 음주도 못할 것 같다.

오늘은 아껴둔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를 읽었다. 김혼비 작가는 글을 정말 재미나게 잘 쓰는데, 그 덕에 핸드폰을 만지는 시간보다 책 읽는 게 좋아 책을 읽었다.

한 상자 가득 담겼던 귤이 몇 개 안 남았다. 1.5L짜리 생수병은 4병을 비웠고, 점심은 초밥을 배달시켜먹었다. 사실 엄청 맛있진 않았지만 배달 봉지와 음료수에 붙은 '별점 5개 주세요' 딱지에 별점 5개와 무지 맛있다는 리뷰를 남겼다. 서로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살아야지.


한편으로, 지금 생활에 너무 적응해버린 것 같아 걱정이다. 무려 4년을 아침에 7시에 일어나 시사 라디오를 듣고 기사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봄날의 플레이리스트', '책 읽으며 듣기 좋은 재즈'로 가득 찼다. 좋아하는 책만 읽으니 정신건강도 인성도 좋아진 것 같다. 지만 여전히 미열은 남아있고, 간헐적으로 나오는 기침 외에 흉통은 어서 나았으면 좋겠다.



코로나 확진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에 최대한 알리지 않았지만, 앓다 보니 넓고 얕은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원래 인간이란 시간이 생기면 잡생각이 느는 법이다.


쉬는 동안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해보겠다는 야무진 다짐은 수포로 돌아갔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생각을 할라치면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눈 부위가 아팠다. 친구들과 신나게 카톡을 하다가도 선배가 보내준 일 관련 기사에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눈이 아팠다. 엄살 아니고 진짜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의 휴일인 주말이 지나고 나면 격리 해제다. 곧바로 회사로 출근해 구멍 났던 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두 배로 뛰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아프고 기침이 난다. 이틀 동안 정말 푹 쉬어야지,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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