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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Mar 27. 2022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런 표정이 나올까

갓 지은 소설


*픽션입니다*


 “잠시만!” 다시 가고 싶은 맛집이나 장소를 인스타에 기록해두는 지민이는 급하게 인스타 ‘보관’ 버튼을 눌렀다. 주말에 여자친구와 기념일을 맞아 방문할 맛집을 찾고 있다는 동료의 물음에 번뜩 떠오른 곳이 있다. 당산역에 있는 와인바는 소규모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마치 일본 ‘심야식당’처럼 요리사를 둘러싸고 앉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수비드 스테이크와 이름도 생소한 버섯 풍기 파스타는 잊지 못할 맛을 선사했다. 남자친구의 취업을 축하하며 축하주를 땄던 곳이기에 기념일을 맞이한 커플에게 제격이었다. 아, 헤어진 지 1년이 넘었으니 이제 전 남자친구구나.

 “이쯤 있었는데 잠시만...” 보관함에는 생각보다 많은 게시물이 남아있었다. 매몰차게 지우지 못한 추억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진작에 지운 커플 사진 말고도 커플링을 낀 손이 나온 셀카, 그와 갔던 장소, 선물 받은 인형, 영화, 편지, 술잔 사진은 줄줄이 지민이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지민이의 심기를 건드린 사진은 따로 있었다. 렌즈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와 이게 내가 맞나’ 지민이는 한참을 그 사진에 멈춰있었다. 3년 전이다. 20대여서 싱그러운 얼굴이 나오는 건가. 지민이는 편안한 후드티에 청색 치마를 입고 카메라를 향해 청량하게 웃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미쳐 묶이지 않은 잔머리 한 가닥 한 가닥이 신나 있었다. 지민이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이 참 이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활짝 웃어본 적이 언제였지’. 머리 길이도 얼추 비슷하고 반 묶음을 하고 적당히 자연광에서 찍으면 비슷한 얼굴이 나오지 않을까. 갑자기 사진 속 자신의 모습에 질투 난 지민이는 머리를 묶고 어플을 켰다. 몹쓸 호기심이었다. 어떤 각도로 찍어도, 어떻게 웃어 보여도 사진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나름 동안 소리 듣는데, 그때에 비해 살이 많이 찌지도 않았는데 한참 이유를 고민하던 지민이는 갑자기 그가 미워졌다.

달라진 건 그와의 관계뿐이었다. 얼추 직장에 적응해 제 몫을 해내고 있었고 고민이랄 거는 지인 결혼식 축의금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정도였다. 주말이면 차로 30분 걸리는 영종도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고 오곤 했다. 오랜 연애에서 주는 안정감이 아늑했다. 취미로 유튜브를 찍어보고 싶단 그에게 지민이는 값비싼 짐벌 카메라를 선물했다. 그는 가장 먼저 지민이와의 여행을 영상으로 남겼다. 이 사진은 그날 찍힌 사진이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혹자는 ‘전 연인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내 모습을 그리워하는 거’라던데. 쏟아지는 무의미한 생각 속에 빠져있다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아 맞다, 식당 추천해주려고 했지. “00 식당이야, 찾아봐” 지민이는 생각보다 한참 아래 있던 사진을 발견해 장소를 넘겨줬다. “잉? 지난해 문 닫았다던데? 없어졌나 보다” 예상보다 오래된 00 식당 방문 날짜에, 이제는 클릭해도 없는 곳으로 나오는 장소 표시에, 지민이의 눈은 식당 게시글에 한참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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