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위스진아쌤 Jul 11. 2020

나의 못 말리는 무대공포증

심장아, 제발 가만히 있어



"내가 영어만 잘했어도 성공했을 텐데..."



국문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영어를 다듬는 것을 업으로 삼은 나에게 어떤 지인이 얘기했다.


나도 '이것만 잘했어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대 위에 서는 것이다.

모든 무대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8살 때부터 해외생활을 해온 나는 다양한 무대 위에 서 봤다. 미국 초등학교 시절엔 아마추어 뮤지컬 무대에 올랐고,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닐 땐 교내 콘서트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했다. 그리고 가족끼리 창작동요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내 지상파 TV와 라디오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학 수업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 대학원 수업에서 토론할 때,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 청중 앞에서 몇 분간 혼자 계속해서 말을 해야 할 때는 정말 고역이었다. 우선 말을 하기도 훨씬 전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하며 예열된다. 손에는 땀이 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그 발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문에디터로 직장생활하는 동안에는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늘 모니터 뒤에서 재빠르게 영문 타자를 치는 것. 이것이 내 일의 외면적 모습이었다. 그렇게 청중 앞에 설 일 없이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경력이 4년 정도 되었을 무렵 나는 퇴사를 선택했고, 이듬해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여 1인 기업이 되었다. 직장에서는 업무가 정해져 있었고 늘 요청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1인 기업은 완전히 달랐다. 내 일거리를 직접 찾아 나서야 수입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감사하게도 시작이 순조로웠다. 1인 기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홍보를 해줬고 직접 의뢰도 해주었다. '나는 1인기업가다'라는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해 소개를 남겼더니, 곧바로 어느 회사로부터 홈페이지 및 애플리케이션 콘텐츠 번역 의뢰를 받았다. 그뿐 아니라 1인기업가 정기모임과 포럼을 통해 나의 사업을 소개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적극적인 홍보로 고객 베이스를 넓혀야 했기 때문에 나의 일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나의 못 말리는 무대공포증을 새까맣게 잊은 채로 말이다.

한 번은 '1인기업가 포럼'에서 발표하는 날이었다. 처음 발표하는 내용도 아니었고 지인들이 다수 참석한 자리였음에도 그날도 어김없이 긴장감을 숨길 수 없었다. 발표를 앞두고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목격한 한 지인이 "아이고, 어떻게..." 하며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 날 발표할 때도 내 목소리는 마구 흔들렸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 하는 채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 날은 그나마 선방한 날이었다. 미소를 띠고 경청해주신 어느 낯선 분 덕분에 전보다 조금은 더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추후 수입이 부진하던 시기에 나에게 단비 같은 업무를 의뢰해주셨던 분이다.)

1인 기업을 하면서 크고 작은 모임에서 발표를 했고, 팟캐스트에도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내 사업을 운영하면서 앞에 서는 일이 많았다. 그것이 영어수업이든 유학 컨설팅이든, 큰 번역 건을 따 내는 일이든, 고객이라는 청중 앞에 서는 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5인이 넘는 청중을 맞이하게 되면 단 한 번도 '아, 오늘 발표는 성공적이었어!' '오늘은 말을 참 잘했어.'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여느 대표님들처럼 당당하고 조리 있게 나의 일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부끄러움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조금 더 여유 있고 멋스럽게 발표를 하고 싶다. 하지만 심장은 또 지나치게 두근거릴 것이고, 요동치는 목소리 또한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다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현재 영문에디터로서 하고 있는 일은 정확히 스피치 에디팅이다. 내가 감수하는 영문서는 여러 국제기구 회의장에서 연설과 발언으로 전달된다. 내 포지션은 비록 무대 뒤편의 작은 역할이지만,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있고 나름대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삶이라는 무대에서는 어떨까? 도망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지 않은가? 신이 나에게 허락한 이 인생이란 무대에서까지 커튼 뒤로 숨은 채 살 수 없진 않은가. 이 글을 쓰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의 진솔한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 이건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을 글로 옮긴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세상이라는 무대의 커튼을 살짝 걷어 빼꼼하고 얼굴이라도 내밀고 싶다.


다시 시작된 직장생활로 인해 스위스에 온 지 2년 가까이 되는 이 시점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낀다. 내 생각과 행동을 단숨에 바꾸게 된 계기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지만, 나에게 굉장히 익숙한 맥락 속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몇 주 전 이 곳 한인교회 예배를 인터넷 생중계로 드리던 중, 목사님께서 이렇게 마무리 인사를 하셨다.


"자유를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구로 자유를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십시오!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전제가 있는 말이지만, '마음대로'라는 부분이 내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때론 이렇게 짧은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동안 나의 생각이나 자신에 대한 엄격한 규율로 스스로를 옭아매진 않았는가. 그것을 핑계로 많은 것들을 시도조차 안 하진 않았나. 삶이란 여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결국 나를 한계 짓는 생각이 아니었나.

이왕 이렇게 글을 통해 드러냈으니, 이 약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언젠가는 그런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나는 청중 앞에서 말할 때 머리가 하얘지고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떨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그래도 괜찮고, 조금 나아져도 다. 하지만 무대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핑계로 무언가를 고려해보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무대에 서는 일은 가능한 한 피할지도 모른다. 나의 모습이든 목소리든 드러내는 것을 계속해서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삶이라는 무대에서 자신감 넘치게는 아닐지라도 나의 삶과 생각을 주변 사람들과 담담히 나누고 싶다. 사랑 안에서 말이다. 이 글이 바로 그 시작점이다.




2016년 어느날, 무대 위에서 -original photo by 나민규  찰진스튜디오 실장님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 오늘부터 1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