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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Feb 09. 2023

시작했다고 모든 걸 끝낼 필요가 있을까

2022년 3월 12일


https://theqoo.net/square/2234107112

  커뮤니티 글을 보다가 생각이 쏟아졌다. 공감이 되었다. 내 마음이었다. 힘들면 버스를 탈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는데 그 '찝찝함'을 없애려고 멈춰선 그 길로 다시 되돌아간다.


  올해 난 사회복지 글쓰기 프로그램과 해결중심 상담 클래스를 신청했다.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보단 끝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다. 모순이라 하겠지만 진심이다.  자신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서 내 가정도 이루지 못하면서 남의 집안일하는 게 속이 뒤집어졌다. 위선이 싫다. 내 마음마저 속이기 싫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게 쉽지가 않아서 자꾸 기준을 찾게 된다. 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지점의 일을 먼저 해야 할까.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닐 땐 아니라고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 될 수 있다. 아닌 걸 알면서 무리하게 끌고 나가는 건 미련한 행동이다. 하지만 난 미련곰탱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섭다. 이 다음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더 두렵다. 이 일을 시작 했으니 내 나름의 끝이 보고싶다는 이유를 말해본다.  부끄러움으로만 끝내는 건 싫다. 못했어도 최선을 다하고 때려치고 싶다. 


  나는 착하지도 않고 신념도 가치도 없다. 할수록 모르겠다. 성공보단 성장에 초점을 두고 하루하루 지내려하지만, 내 앞에 상식밖의 일이 일어나면 월급이고 뭐고 얼마 있지도 않은 인류애가 사라진다. 차라리 백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테다. 낙하산이 아닌데 낙하산이라고 욕을 하는 직장동료에게 속이 상하는 건 무슨 억울함일까. 집 가까워서 이력서 낸 게 뭔 잘못일까. 엘리스의 비합리적 신념 첫 번째,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야 한다."를 떠올려본다. 나 또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사랑 받을 필요도 없다. 내 마음과 달리, 내 시작과 달리,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많고 내 뜻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10년 가까이 했으면 할 만큼 한 걸까.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 고민하고 정리하고 아파했던 이 시간들이 다른 업종에 가서도 반복될 게 분명할텐데. 그럼에도 적어도 죄책감은 느끼지 않고 편하게 일만 할 수 있지 않을까.


경력이 쌓일수록 장점과 강점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단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점검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당신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사슬의 강도를 결정짓는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약점을 찾았다면 반드시 튼튼하게 보완하자. 그것이 당신을 높은 곳으로 이끌지는 않겠지만 당신을 높은 곳에서 끌어내릴 한순간을 막아줄 것이다.

눈떠보니 서른 / 강혁진 저


  남들은 말한다. 꼭 끝을 봐야하냐고. 그 끝이 도대체 어디냐고.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끝을 올해로 정했다. 올 한해는 이 직업이든 내 생활이든 결판내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바로는 못 그만둔다. 직장상사의 뒷담, 평가를 들었다. 일 못하는 사람. 평소 따르고 싶었던 상사였기에 속상한 마음이 컸다. 전 직장상사에게 받은 좋았던 평가들이 머릿 속을 스쳐갔다. 오랫동안 함께 일했기에 마음이 더욱 허해졌다. 인정 받지 못하더라도 피해는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잘하려고 할수록 더욱 괴롭다. 나약한 내 모습이 싫어진다. 


 그래도 이직을 후회하지 않는다. 매듭짓고 싶은 느낌이 더 강해진다. 내 이야기를 정제된 언어로 말할 용기가 생긴다. 많이 담담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늘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전전긍긍했다면 이제는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끈기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2023년 2월 9일


  복지관을 그만뒀다. 이직 직전 정말 핑크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잃었다. 직장, 가족, 인간관계, 건강, 돈까지. 누가 당사자인지 사회복지사인지 분간할 수 없으며, 나는 지금 또다른 사회복지사의 당사자로 기관을 방문한다. 


  복합적인 이유였지만, 그 중 하나가 부적응이 이유일까. 마음 하나 둘 곳 없이 일하는 곳이었고, 그나마 마음 하나 붙일 곳도 뒤통수 맞기 일쑤였다. 입사 첫 달, 상사에게 순해서 다행이란 말을 들었다. 경력직 이직으로 혹여 타 직원과 부딪칠까 걱정되어서라고 했다. '순하다'라는 말이 참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쉽게 경계를 풀었다 생각하고 나도 마음을 좀 편하게 먹기로 했었다. 앞담이 익숙했던 전 직장과 달리 뒷담이 난무한 직장에서 버티는 것도 꽤나 힘이 들었나보다. 아등바등했지만, 몸이 버텨주질 않았다. 집 가까워 오래 다니고 싶었는데, 역시 맞는 곳이 있고 안 맞는 곳이 있나보다. 건강악화로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돈도 중요했지만, 긴 병에 장사 없다고 가족도 아닌 직원들에게 짐을 주기 싫었다. 잘 그만뒀다. 그럼에도 내 사정을 이해해주고 마지막까지 잘 나갈 수 있게 해주신 몇몇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모든 회사생활이 다 그렇지 않을까. 남탓하지 말자. 이 세상에 아무런 이유없이 생겨나는 건 없다. 


  어떤 사정이든 간에 "열심히"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 그곳에서는 나의 열심은 미련함이었고 잘하지 못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직원이었을까.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잘해야만 해. 이 정도는 해야해.' 항상 쫓기며 살았다. 


  회사의 모든 소문을 듣고도 굳이 입 닫고 있는 나에게 아닌 척 비꼬는 사람 앞에서 모르는 척 연기하는 것도 꽤나 힘들었다. 사내정치도 외부인사도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여러 예측도 지겨웠다. 울보인 나는 그곳에서 눈물이 말랐다. 웃을 일이 줄어들었다. 30대는 사리분별 가능한 정도의 경험도 있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현타도 맞았고 방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력과 오롯이 나에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니까.

 

  참 많은 걸 배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더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나는 분명 그곳에서 성장했다. 전체 돌아가는 맥락을 보는 힘을 키웠고 내 입장에서 하고픈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명분과 실리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명분에 휩쓸려 때를 놓쳐 굴욕적인 사건을 당하기 전에 상대방의 명분과 실리를 같이 읽는 경험들을 했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진심만큼이나 직장 생존에 더 중요한 걸 배웠다.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나에 대한 의견을 인정하고 나와 같은 의견을 편애하지 않아야함을 배웠다. 


  짧은 시간 내 이용자와의 좋은 추억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일부 직장동료들과의 상식 이외 관계에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했었나보다. 나의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보여주는 사람보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여줘야하는 사람보다 그렇게 봐주는 사람과 함께이고 싶다.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아픔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딱 그만큼의 거리다. 선택에 따른 불안과 책임은 인간의 숙명이니까.


 시작했다고 모든 걸 끝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난 잠깐 사회복지 현장을 포기한다. 포기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잠시 쉬어가려고 한다. 모든 걸 잃어버린 나를 다시 세워줄 힘을 찾아야한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하루하루 약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제 다시 글 쓸 힘을 얻었다. 

 잘 그만뒀다. 그리고 나의 문제점, 약점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내가 뭘 잘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그곳에서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도 나의 일부분이기에 난 나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직하면서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는 다짐이 처참히 밟혔지만, 입장은 상대적이기에 혹여 나로 인해 힘든 사람이 있었다면 미안하단 말도 전해주고 싶다.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난 곳이기도 하니, 좋은 기억만 가져가려고 한다. 짧은 시간 나름 굵게 있다 떠났다. 언젠가 다시 실천현장에서 만나면 일부는 아는 척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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