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방향 감각

이쪽이 맞다고 말하며 먼저 걸어갈 수 있는 감각

by 이웃의 토토로

어릴때 지도보는 것을 좋아했다. 큰 한 장 짜리 세계지도부터 시작해서 사회과부도를 거쳤다. 좋아하는 대륙과 나라와 도시를 찾아서 세세하게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낯선 지명이나 낯익은 지명을 보면서 읽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나오는 지도를 샅샅이 뒤져가며 읽기도 했다. 빙빙 돌아가는 지구본을 하나 갖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세계지도를 대충 집어넣은 후 부터는 절실함이 사라졌다. 가끔 지구본을 마주칠때면 그저 감탄하고 빙 돌린 후에 지나갈 뿐이다.


운전을 시작하면서는 서울시와 경기도, 그리고 전국 지도를 운전석 옆에 두고 출발전에 도착지까지의 길을 살펴보면서 머릿속에 기억을 하고, 중간에 잠시 멈춰서 방향을 확인하고 남은 경로를 업데이트 하기도 했다. 네비게이션을 쓰면서 힘들고 복잡하게 길을 찾아가는 건 없어졌지만 그만큼 머리를 안쓰게 되어서 새로운 길이 생기면 무작정 따라갈 뿐이다. 요즘은 경로와 대안경로, 단속카메라의 위치, 주행 속도 까지 네비게이션으로 안내 받으면 신경쓸 일이 줄어들지만 생각은 안하게 되는 것 같다. 빨갛게 화면이 깜빡거리면 그제서야 무슨 이벤트인가 쳐다볼 뿐이다.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기 위해서 평소 아는 길은 가급적 네비게이션을 안쓰거나, 쓰더라도 도착시간 예상만 확인하는 정도다.


어릴적부터 길을 잃어버린 경험이 거의 없는데, 걸어서 가거나 차로 가거나 상관없이 한 번 찾아간 길은 다시 되짚어 돌아나올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갈 수 있다. 빙 돌아서 가면 대부분 지하철역 같은 목적지로 직선 경로를 찾아서 돌아온다. 이건 국내건 처음 가는 해외건 마찬가지다. 중간에 길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돌아야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은 찾아서 더 빠르게 돌아올 수 있다.


도쿄에 처음 출장을 갔을 때, 일본어를 하지만 역시 처음 가본 직원과 업무가 끝나고 (당시 인기 있는 지역이었던) 북쪽의 이케부쿠로역에 내려서 ’토이저러스(Toys Rus)’가 있는 지하상가를 찾아갔다. 넓은 지하몰을 지나서 토이저러스 매장의 복잡한 진열대를 돌고 나오니 방향이 헷갈렸다. 잠시 생각해 보고 “이쪽이에요”라고 말하고 직원을 데리고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 와 본 곳인데 어떻게 확신하냐고 물어보았지만 그 방향으로 다시 이케부쿠로역으로 돌아왔다. 함께 한 직원이 매우 신기해 했는데 생각을 잘 해보면 그 방향인 것 같았다.


홍콩은 남북방향을 알기가 쉬워서 어렵지 않았고, 도시가 구부구불하게 발달한 유럽의 도시들은 조금 더 생각을 해야 했지만 방향을 잃어버리진 않았다. 일종의 공간지각능력이 있는 것인데, 3차원으로 된 도형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추론하는 능력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이 감각은 살아가면서 매우 유용하게 도움이 된다.


20251202. 1,341자를 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월이면 생각나는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