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옷을 입는 건 쉽지않다
꽤 오랫동안 유튜브를 운영했었다. 운 좋게 8만 명 남짓의 구독자를 모을 수 있었고, 덕분에 몇 년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돈을 벌자는 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었지만, 구독자가 쌓이고 내가 만든 영상에 대한 반응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돈도 돈이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일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다. 지금도 별로 다를 건 없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은 자극적인 주제, 자극적인 워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그래도 그땐 그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꼴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추를 잘못 낀 게 아니라 다른 옷을 입어버렸다. 처음 시작할 때는 큰 생각 없이 당시 인기 있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서 조회수를 많이 모을 수 있는 영상들을 제작하다 보니 자극적인 콘셉트가 잡혀버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채널이 부끄러워졌다. 조회수를 우선으로 두고 영상을 제작하는 내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몇 번 좋은 내용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해봤다. 하지만 이미 자극적인 내용들을 원하고 구독해준 시청자들에게 내가 새롭게 주려고 하는 콘텐츠들은 그저 재미없는 영상 들일뿐이었다. 구독자들은 잘못이 없다.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콘셉트를 잡았기 때문에 그런 콘텐츠를 계속 바라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래서 몇 번 유튜브를 중단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그때마다 구독자들은 내가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좋아해 주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그들의 니즈를 받아들이고 내가 거기에 맞춰 제작하고 싶기도 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콘텐츠보다는 백만 배 더 나았으니까. 그래서 몇 달을 또다시 원래의 콘셉트로 영상을 제작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권태감이 밀려왔다. '아 내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는 이런 게 아닌데'. 다른 채널을 개설해서 새로운 걸 해볼까?라는 마음에 영상을 몇 개 만들어보다가도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조회수를 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3,4번을 휴식하고 운영하고를 반복하던 차에, 내 유튜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기존 채널의 구독자 수와 조회수에 대한 미련이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게끔 하는 주된 요인이었다. 그런데 웬걸,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생각이 변해서 그런 건지 이제는 원래 콘셉트의 영상을 만들어도 재미있게 만들기가 어려웠다. 진짜 퇴물이 되어버렸다. 아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영상을 만들지 못하는 내 상태가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오히려 문제가 간단해졌다. 더 이상은 원래 하던 유튜브를 잡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어차피 다시 해도 (유튜브 캐릭터 속의) 나를 좋아해 주시는 구독자분들께 맞는 영상을 만들 수 없게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계속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채널을 보겠나. 결국 미루고 미뤘던 공지 영상을 올렸다. 5년간의 유튜브를 끝낸다는 영상이었다.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위에선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 말했지만 그래도 내 손때가 묻은 옷이었기에, 벗어버리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행히 구독자분들도 이해해주시고, 응원의 댓글도 많이 달아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했다. '그래도 내가 지난 시간 동안 못된 콘텐츠를 만들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원래 구독자분들에겐 낯선 콘텐츠라 그런지 구독자가 슬슬 빠지고 있다. 조회수도 반의 반토막이 났다. (사실 더 났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편하다. 내가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내는 것이 언젠간 유튜브를 떠돌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포맷이라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일단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개선해나갈 예정이다. 이제야 나랑 더 싱크가 맞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더 좋은 얘기를 하고 더 좋은 음악과 더 좋은 콘텐츠를 제작해나가고 싶다. 좋은 생각과 음악이 함께하는 커뮤니티가 내가 만들어나가고 싶은 콘텐츠의 지향점이다. 언젠간 그렇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