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글을 안 쓴 지 어언 1년이 지났다. 한동안 꽤나 시간을 들여가며 즐겼던 취미인데, 지난 1년간은 생각이 들어간 글은커녕 내 생각이 들어간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 올리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는 뜻일까. 돌이켜보면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정리해야 할 생각들이 많았다. 도망치듯 돌아다녔던 시간 사이사이에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혀있었다. 여유가 생겨서 다시 제 길로 돌아가려 하는 것인지 돌아가기 위해 여유를 만들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생각을 정리해 보려 따뜻한 자몽 차 한잔과 함께 카페에 앉아있다.
생각은 형태가 없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인데, 이를 정리하려면 날 잡고 집청소를 하듯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차라리 여기저기 어질러진 잡동사니들처럼 집에 들어갈 때마다 눈에 밟힌다면 '언젠가 치워야지'하는 주의라도 받을 텐데, 눈에 보이질 않으니 어느 정도 어지러운 상태인지도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저 서울을 뒤덮고 있는 미세먼지처럼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생각 조각들이 답답하게, 눈이 따갑고 목이 칼칼하게 느껴질 뿐이다.
정리하는 방법도 참 번거롭다. 집을 청소하는 것처럼 마음대로 나뒹구는 물건들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다시 돌려놓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생각의 집은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하나를 정리하려면 그와 관련된 것들도 다 함께 손봐줘야 한다. 마치 올이 나간 옷처럼 튀어나온 생각의 실이 작던 크던 실의 시작점부터 조심스럽게 풀어 다시 새로운 옷을 짜주어야 한다. 풀어내는 과정도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다시 이를 짜는 과정도 꽤나 시간이 소모되는 작업이다. 시간이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짜내기가 귀찮고 힘들어서 튀어나온 올을 하나씩 잘라내다 보면 어느새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옷을 입고 스며드는 바람에 한기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에 쫓기듯 생각을 정리하면 어찌어찌 완성하더라도 옷의 형태를 갖추는 데에만 급급해 넝마 같은 옷이 되기 십상이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 나한테 온전히 집중하고 차근차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문제의 시작점을 짚어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생각의 실을 풀어놓고 정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럼 여유는 언제 생길까? 밀려있는 일과 생각들을 쳐내다 보면 선물처럼 찾아올 때도 있고, 직접 '여유의 시간'을 바쁜 스케줄 속에 부킹해야 할 때도 있다. 전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여유니 그때를 감사하며 잘 활용하면 되고, 후자는 의식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여유다. 아무리 바쁘고 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고정 지출로 생각하고 비워놓지 않으면 여유는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
여유를 확보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꼭 노트와 펜이 준비된 독방에 앉아 치열하게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아침 명상을 통해 여유를 찾고, 누군가는 한강변을 거닐며 여유를 느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와의 커넥션을 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Chill'한 상황에 나를 놓는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보통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자칫 이런 시간을 홀대하기 쉬운데, 그 시간의 가치를 돈 몇 푼 더 버는 것보다 높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나를 위한 시간은 뒤로 밀려 리스트의 끝자락에서 잊히기 쉽다. 여유라는 말의 어감과 다르게 꽤나 능동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여유를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조금은 암울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나에게 맞는 여유의 시간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여정이 될 수 있다.
나는 최근에서야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려 하고 있다. 아직 부족하고 정리해야 할 생각이 많지만 조금씩 마련해 놓는 여유 속에 중심을 찾아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내가 입고 있던 옷의 올이 풀리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손쉽게 잘라내는 방향을 택했었다. 다행히 나를 아껴주는 좋은 친구들이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 뚫려있는 구멍들도 찾아주었고, 나는 조금 더 명확하게 내 상태를 알게 되었다.
조금은 귀찮고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마련해 둔 여유시간과 함께 얽혀있던 생각들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다시 엮어나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