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로브 MAROB
May 29. 2021
아이없는 신혼의 삶이 과연 필요했을까
나의 해방을 축하하는 시간이자, 부부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간
호기롭게 선포했던 신혼 2년의 시간은 잡을 새도 없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2년의 신혼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왜 필요했을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나의 결론은 이 시간은 내가 나에게 주는 있는 일종의 보상과 같은 해방의 시간이라는 것. '그래, 이제 독립했으니 어디 한번 마음대로 살아보자!', '결혼했으니 자유롭게 즐겨보자!'와 같은. 어찌 보면 결혼은 나에게 일종의 도피처였다. 잠깐의 기숙사 생활과 외국 생활을 제외한다 해도 30년이었다. 30년 동안 부모님 밑에서 함께 살면서 부모님은 늘 하나뿐인 외동딸이 밖에서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셨다. 우리 부모님의 걱정과 관리 수준은 내 친구들 사이에서도 단연 탑이여서 항상 밤 9시면 카톡으로 영락없이 귀가 독촉 메시지가 오고 여러 통의 전화가 왔다. 덕분에 요즘 같이 밖에 재밌는 게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는 하루도 마음 편하게 밖에서 놀아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파블로브의 개처럼 저녁 8시, 9시만 되면 자꾸만 핸드폰으로 눈길이 가고 마음이 너무 불편해졌다.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데이트도 번갯불에 콩 궈먹듯 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헤어진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자유가 너무 그리웠다. 마음껏 밤거리를 누빌 수 있는 자유, 심야 영화를 보고 술 한잔 마시고 집에 마음 편히 들어갈 수 있는 자유,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갈망했다. 나에게 결혼 후 2년은 그동안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내가 정한 나만의 타임라인이었다. 다행히 남편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나의 부모님 때문에 마음껏 하지 못했던 데이트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2년 동안 그래서 뭐했는데? 대단한 거 라도 했니?'라고 묻는다면 글쎄다. 2년을 뭉뚱그려서 본다면 2년 동안 특별히 한 거라곤 여행 다녀온 것과 야식 만들어 먹고 맥주 많이 마신 것 밖에는 없는 것만 같다. 하지만 불현듯 '아, 우리 그때 거기 좋았는데.', '맞다! 우리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라며 떠오르는 심심치 않은 기억들은 대부분 이 2년 속에서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 대단한 신혼은 아녔을지 몰라도 그 시간을 속속들이 낱알로 본다면 하루하루가 우리 부부에게 꼭 맞는 맞춤형 2년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사실 2년이라고 편의상 부르고 있지만 딱 2년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1년은 너무 짧고 3년은 좀 긴듯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어디쯤이면 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30년간의 놓쳤던 내 자유도, 그리고 앞으로 육아 때문에 놓치게 될 부부로써의 자유도 어느 정도 보상이 될 것만 같았다.
혼전 임신으로 결혼을 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에게 한 번은 이렇게 물었다.
"결혼하고 바로 아기 낳으니깐 어때?"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다.
"결혼 전에 엄청 놀아서 미련 없다! 다행이지."
대답을 듣고 깨달았다. 내 삶을 돌아봄에 있어 "미련"이 없는 것. 결혼 전에 많이 놀아본(?) 친구는 많이 놀아본 경험이 미련을 없앤 길이었고, 나에게 있어 미련은 나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부부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한 후에나 없앨 수 있었던 것이었다.
2년 동안 우리는 6개국으로 해외여행을 갔고, 20여 곳이 넘는 국내여행을 갔고, 늦은 밤까지 수제 맥주 맛집에서 수백 잔의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며 밤을 새웠다. 아이를 데리고는 몇 년간은 엄두조차 못 낼 순간들을 보냈다. 위태위태했던 산속에서의 액티비티, 마감시간까지 춤추며 놀았던 해외 클럽, 귀가 시끄럽도록 음악이 울려 퍼졌던 지하 맥주집, 바닷가에서의 음주(?) 물놀이, 2만 걸음 넘게 걸어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던 하루, 풍랑주의보 속에서의 서핑 같은 순간들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공백은 나만의 시간으로 하나씩 채워갔다. 혼자 제주도로 떠나고 여유 있는 주말 아침과 주중 저녁에는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혼자 베이킹을, 도예를,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혼자만의 안락한 시간을 보내며, 부부의 자유 시간을 즐기며 그렇게 나의 미련은 점점 사라져 갔다.
한편으론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은 내 부모님도 하고, 옆집도 하고,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다 하는 일인데 내가 너무 대단한 것처럼 유난스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늘 희생만 있지도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아기로 인해 더 행복하고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그래, 이 맛에 살지.'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나를 먼저 돌보는 일, 부부 둘만의 알콩달콩한 삶을 살아보는 일은 이 모든 것을 제치고 너무도 중요했다. 아기로 인해 우리는 분명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일 거라 생각한다. 아기가 생긴다면, 그래서 우리가 세 식구가 된다면 다시 나 혼자 만이 존재했던 삶으로, 부부 둘만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건 명백할 테고 어쩌다가 그렇게 할까 하려면 주변의 도움과 아기의 인내와 협조가 필요할 테니깐. 그래서 그전에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 세 식구가 각자 그리고 함께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