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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cud Mar 05. 2024

멜랑콜리아

그것의 귀환

빌어먹을 씹새끼가 죽지도 않고 또 나를 찾아왔다.

그것을 다시 만난 소회는 반가운 증오였다.


1. 그것


 그것과의 첫만남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별안간 머리를 죄며 찾아든 불청객은 어린 영혼에겐 버거운 상대였다. 그 당시는 불치병이라도 걸린 듯 온 집안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좀벌레 같은 그것은 사악하게도 상선하는 우주선에 몰래 숨어든 에어리언 마냥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뇌 한구석에 자리잡고서 몸집을 불려나갈 때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아스피린 한통으로도 진정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느낌은 마치 거대한 몸집의 남자가 손으로 다 잡히지 않을 꽃 한송이를 쥔 기분이랄까. 내게는 그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렸다. 한참 구역질을 참다 한계에 다다르면 한껏 게워내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아마도 그때의 토사물은 그것이 안으로부터 나를 갉아 먹고 남은 배설물이었을 것이다.


 사춘기 무렵 나는 은신 동굴을 발견했다. 그 곳은  마치 무한 동력처럼 충전 배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한동안 머물기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이 닫혀 세상과 영원히 단절되는 위험한 공간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동굴을 지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갇히진 않았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공간이다. 아무튼, 동굴에 숨어 체력을 비축하고 나면 그것을 상대할 힘이 생긴다. 마침 날씨도 화창하고 따사로운 햇살에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빛이 세상을 뒤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것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과의 동거는 그것을 자각한 이후로 어림잡아 20년이 넘었을 것이다. 가끔은 내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것은 나와 함께 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그것과 나의 사이는 오래되었다.  어느 정도 자란 무렵, 나는 그것의 습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도망치기 보다 맞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시탐탐 뒤를 노리며 앞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복된 경험으로 나는 그것의 중요한 몇가지 특징들을 알아내었다.


 우선 그것이 뒤를 덮칠 때에 나는 고약한 냄새가 있다. 마치 가스 착취제 냄새와 같은데, 코가 아닌 입안에서 느껴진다. 비릿하고 썩은 배추 냄새와 흡사하다. 그리고 함께 찾아오는 것이 두통인데, 이는 전조에 불과하다. 그것은 서서히 주변으로부터 나를 고립시킨다. 특히나 그 수법이 악랄한데, 그 중 하나는 관심과 의미를 지워가는 방법이다. 마치 평소 좋아하던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의미있다 생각했던 행동들이 가치 없다고 느껴지도록 만든다. 한마디로 공허를 경험케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둔감하게 한다. 마비 가스처럼 감각과 감정을 무뎌지게 만든다. 어느것 하나 제대로 느껴지지 않게 하여, 반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반응이 느려지면 게으르고 나태해지게 되고, 주변 역시 엉망이 된다. 무질서한 환경은 백색소음 처럼 처리 불가능한 정보값으로 다가오게 되고, 수용치를 넘어선 감각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이 악순환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것과 같은데, 몸부림 칠 수록 거미줄에 더욱 달라 붙는 것과 같다. 기력이 쇠할 때쯤 그것은 여덟개의 다리를 한 채 천천히 다가와 나의 체액을 빼먹는데, 그것의 독니가 분비하는 마비독은 고통이 쾌락으로 느껴지도록 만들 때가 있어 매우 위험하다.  그렇게 체액이 빨리고 나면 마음도 몸도 텅 비게 되는데, 살랑 바람에도 살가죽이 바스라져 찢긴다. 그리고는 마치 개미에게 자살을 명하는 동충하초처럼 숙주인 나를 죽이고 자실체를 뿜어낸다.


 때로 그것은 거대한 천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서서히 지구를 향해 다가오며 온갖 혼란과 절망을 안겨주지만 그것의 거대한 중력에 홀린 듯 이끌리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날을 카운트 다운 하며 종말의 그날을 기대하게 한다. 그 순간은 기꺼이 그 순간을 맞으리라 하지만 그것의 고도의 속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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