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종말, 혹은 새로운 시작에 대하여 3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에서, 이 모든 계보가 단절된다.
AI 이미지는 현실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억 장의 이미지로부터 추출된 통계적 패턴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어떤 특정한 빛도, 특정한 시간도, 특정한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AI 이미지는 모든 빛의 평균값이며, 모든 시간의 평균값이며, 모든 장소의 평균값이다. 그것은 특정한 현실의 흔적이 아니라, 현실들의 평균에서 발생한 확률적 환영이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AI 이미지도 현실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요리사가 재료의 원산지를 안다고 해서, 완성된 요리가 원산지의 흔적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AI 이미지 속의 어떤 픽셀도 특정한 원본 이미지의 특정한 픽셀과 대응하지 않는다. 학습 데이터는 통계적 패턴으로 용해되었고, 그 패턴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가 결정화된다. 흔적은 패턴으로 변환되었고, 패턴은 흔적이 아니다.
퍼스의 기호학을 빌려쓰면 이 차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사진은 지표(index)였다—빛이 필름 위에 물리적 흔적을 남기는 인과적 관계에서 의미가 발생했다. 회화는 도상(icon)이었다—대상과의 유사성에서 의미가 발생했다. AI 이미지는 어떤 범주에 속하는가? 그것은 도상처럼 보이지만 지표의 근거가 없고, 상징처럼 자의적이지만 관습의 근거도 없다. AI 이미지는 지표의 외양을 가진 비지표이다. 그것은 퍼스의 체계 밖에 있는 기호이다.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자. 사진은 발자국과 같다. 발자국은 누군가가 그곳을 지나갔다는 사실을 보증한다. 디지털 사진은 그 발자국을 스캔한 것과 같다—형태는 보존되지만 물질적 접촉은 사라진다. AI 이미지는 수백만 개의 발자국을 학습한 후, '발자국 일반'을 생성한 것과 같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발자국도 아니면서, 모든 사람의 발자국이 될 수 있다. 이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없다.
플라톤은 이미지를 이데아의 그림자라 불렀다. 회화는 그림자의 그림자였다. 사진은 이 위계를 붕괴시켰다—그것은 현실 자체의 직접적 각인이었으므로. 그렇다면 AI 이미지는 무엇의 그림자인가? 그것은 그림자들의 평균값에서 발생한 그림자이다. 원본 없는 복사, 출처 없는 인용, 기억 없는 향수. 오늘날 우리는 사진의 발명에 비견할 만한, 그러나 훨씬 더 근본적인 단절의 앞에 서 있다. 사진은 현실과의 접촉 방식을 바꿔놓을 뿐, 접촉 자체는 유지했다. AI 이미지는 접촉 자체를 제거한다. 이것이 제3의 단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