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종말, 혹은 새로운 시작에 대하여 2
디지털 이미지는 사진의 흔적을 숫자로 번역했다. 카메라 센서가 빛을 포획하고 이를 픽셀 단위의 수치로 변환할 때, 현실은 흔적이 아니라 번역이 된다. 그러나 번역에는 여전히 원문이 있다. 디지털 사진의 픽셀 하나하나는, 비록 숫자로 치환되었을지언정, 특정한 시공간에서 특정한 빛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빌렘 플루서는 이를 '기술적 이미지'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다. 기술적 이미지는 전통적 이미지처럼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장치(apparatus)의 프로그램에 의해 세계를 번역한다. 카메라는 하나의 장치이며, 사진가는 그 장치의 프로그램 안에서 작동하는 기능인이다. 그러나 플루서조차도, 번역의 원본이 존재한다는 전제는 유지했다. 카메라 앞에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이 번역된 것이다. 인덱스는 살아남는다.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에는 이미지 조작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포토샵은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을 변경함으로써, 현실의 번역을 수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조작된 이미지에도 여전히 원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작은 흔적을 변형시키지만, 흔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히토 슈타이얼이 '가난한 이미지'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것처럼, 디지털 이미지는 복제와 압축을 거듭하며 해상도를 잃어가지만, 그것의 기원에는 여전히 카메라 앞에 있었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