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종말,혹은 새로운 시작에 대하여 1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회화를 대체할 것이라 생각했다. 폴 들라로슈는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한다. 그러나 사진은 회화를 대체하지 않았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범주의 이미지를 창안했다. 빛이 은염 위에 직접 새겨진 흔적—이 흔적의 존재론이야말로 사진이 회화와 구별되는 지점이었다.
앙드레 바쟁은 사진의 본질을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사진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화가가 붓을 움직여 대상을 해석하는 회화와 달리, 사진은 기계적 과정을 통해 현실의 자국을 보존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해석이 개입하기 전의, 현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다. 바쟁에게 사진의 객관성은 인간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카메라라는 비인격적 장치가 인간의 주관적 해석을 배제함으로써, 현실 자체의 각인을 가능하게 한다.
이 접촉의 존재론적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의 모든 이미지는 인간의 손을 경유해야 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부터 카라바조의 유화까지, 모든 이미지는 현실을 본 눈과 그것을 재현하는 손 사이의 해석적 간극을 포함했다. 사진은 이 간극을 제거함으로써, 이미지의 역사에서 유례 없는 사건을 만들어냈다. 빛 자체가 이미지를 만드는 주체가 된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 사건의 의미를 '이것이 있었다(ça a été)'라는 명제로 집약했다. 어머니의 사진 앞에서 바르트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그가 '푼크툼(punctum)'이라 부른 것—은 그 이미지가 실제로 어머니의 모습을 기록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푼크툼은 미적 감동이 아니라 존재론적 충격이다. 이 사람이 실제로 이 모습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 그러나 사진의 이 혁명적 성격은, 동시에 사진의 한계이기도 했다. 사진은 현실에 종속되어 있었다. 카메라 앞에 무언가가 있어야만 사진은 존재할 수 있었다. 사진은 상상할 수 없고, 꿈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