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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븐 Oct 18. 2021

직장이라는 무대, 내가 만드는 공연

[인생의 중간즘] 직장 또는 일터에 대한 생각



대학교 4학년 때 광고 쪽의 짧은 인턴 생활을 경험하고, 잠시 친구와 함께 창업을 했었다. 핸드폰 케이스를 디자인해서 유통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시 얼룩말(지브라) 무늬로 인기를 좀 끌긴 했지만 진입 장벽이 워낙 낮은 사업이었고, 미숙한 경험만으로 한계를 많이 느껴 그만두게 되었다. 창업의 실패 경험과 어려웠던 인턴 생활 때문인지  마인드는 더욱 가난해졌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던 그때, 일종의 추천을 통해서 지금 몸담고 있는 일터로 오게 되었다. 

일단 시작한 업무는 경영기획팀 총무였고, 회사의 경영에 맞춰 다양한 행정업무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급성장하고 있는 회사는 브랜딩 차원의 프로젝트와 신사업을 위한 준비 중이었는데, 신입이었던 내게 '참여 기회'를 주었고, 나는 그 기회를 통해서 일에 대한 개념을 잘 배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다행히 회사 입장에서는 신입이었던 내가 낙오 수준은 아니었나 보다. 이후 지속적으로 회사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는 본격적으로 힘겨운 시간이기도 했다. 새벽에 나가 늦은 밤까지 현장에서 뛰며 학습자들과 담당자들을 만났다. 투입되는 강사진을 투입 전날 새벽까지 교육시킨 적도 많고, 교육 자료와 운영 자료를 준비하느라 많은 밤을 새우기도 했다. 퇴사하는 직원을 밤새 설득해보기도 하고,  사업 비딩 준비에 주말을 반납하고 제안서 작업에 몰두한 적이 비일비재했다. 요즘같이 워라밸을 노래하는 시대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단계씩 끝날 때마다 나의 한계를 조금 넘었다는 기쁨과 맡은 일을 마무리를 했다는 기쁨이 파도같이 밀려왔다. 앞서 언급했던 가난한 마인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많은 선배들이 언급했던 일의 즐거움이었을까. 자연스럽게 그리고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 부분에 사회생활의 방향을 정했다. "먼가 크게 내공을 쌓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는 일에 대한 기회는 주어지는 대로 무조건 참여한다." 창업과 인턴생활의 실패 경험이 '최다 기회'를 주는 직장으로 마음을 정하게 한 것이다.

현재 일터에서 일한 지 15년 정도 되었다. 매년 쉽지 않은 도전들이 있었고, 나름 그러한 도전들을 기회라 여기고 응전하다 보니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흐른 것 같다. 앞으로 일해야 할 시간들이 배는 더 남았지만, 한 직장에서 15년 일하다 보니 가끔 이렇게 정리하고픈 포인트들이 있다. 특히, 이 글의 주제인 '직장' 또는 '일터'에 대한 부분이다. '일(work)이란 무엇일까'에서 '직장이란 무엇일까'로 의식과 관심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월급을 주는 곳, 나를 좋아해 주고 내 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는 곳, 내 소중한 젊음을 갈아 회사를 위해 돈 벌여 주는 곳 등등... 직장인이라면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일터가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내가 가진 역량으로 조직에 기여하고, 더 나은 역량을 발현할 수 있는 장(場)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최고의 경험'을 하려면 직장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요즘 MZ세대에게 직장은 '정류소'와 같다는 말이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이직을 쉽게 진행할 수 있다는 기류가 깔려 있다.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정말 소중하니까. 반대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면 직장에서 열정적으로 풀어보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성장에 대한 부분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점을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직장인들이라면 <직장은 내가 만드는 공연을 펼칠 수 있는 무대>로 보는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만드는 공연! 고객과의 스토리를 만들어서 입체적인 배경과 모멘텀들을 계획해서 넣고, 재미와 즐거움을 담아내는 기회들을 펼치는 공연. 그리고 그 갈채를 통해서 나를 실현하고 인정받는 그 공연 말이다. 어떤 공연은 준비 부족이나 출연진의 실수로 망하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공연은 관중들의 찬사를 듣기도 한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일(work)이라고 본다면 직장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그러한 공연으로 '최고의 경험'을 선사해 줄 수 있다. 물론 직장이라는 무대가 모두 똑같을 수는 없다. 내 생각엔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무대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살아온 날들에 대한 결과로 무대를 정했다면, 그 무대에 나의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도전한다면, 청중뿐만 아니라 모두에게도 갈채를 받는 시간들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인생이 아주 길기에, 꾸준히 공연에 대한 준비를 기획해 나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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