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중간즘]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야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의 30대는 정말 번개같이 지나갔다. 세세하게 순간마다 따져보면 길고도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이 있었고, 치열했던 스토리가 가득했으나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순삭이었다.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린 경주마 꼴이다. 다행일까.
사십 대를 접어들면서 조금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한 여유는 시간이 흘러 나이가 찼기에 그런 것 같진 않다. 아마도 일하면서 크고 작은 실수들을 통해서 나를 알게 되었고, 작은 성취들을 통해서 일의 한 고개 한 고개들을 넘어갈 때 느꼈던 경험들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경험들의 한 꼭지에서는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 한 줌을 나에게 주었던 사람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나에게 소개해 준 배려 한 줌을 준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그분들의 나에게 준 한 줌 한 줌이 그분들의 인생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오묘해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삶은 일직선이 아닌 방사형 같다. 마치 거미집 같다고나 할까. 삶은 사람들과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고, 시간의 빠른 흐름 속에서 그러한 거미줄들은 연결과 끊어짐을 반복하는 것 같고,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오랜 기간 중요한 연결도 있지만, 끊어지고 잊히는 연결 지점도 있는 것 같다. 감dd사하게도 나를 연결 상대로 생각해 주시고, 그 연결 부분에서 자신의 인생 한 줌을 더해 준 분들, 그분들이 내 인생에 있었다.아니 정확하게는 그분들의 인생에 내가 있었던 것이겠지. 다니던 대학교를 중퇴하고 군대에 갔을 때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이 가득했었다. 진로 고민을 한창 들어주던 옆 중대 선임이 '이거 한번 읽어 봐라, 네게 도움 될 것 같다' 하며 던져 준 책이 <피터 드러커의 자기 경영노트>였다. 그의 맞춤 추천에 나는 경영학으로 학과를 전환하며 인생의 궤도를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전을 다독하던 친구 형이 있었다.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그 형을 마치 마법에 빠진 듯 매일 밤 찾아갔다. 고등학생이 중학생을 앉혀놓고 <데미안>의 내용과 자신의 인생철학을 얘기하는 것이 어른들 보시기엔 생뚱맞은 광경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겐 어떤 1타 강사보다 재미있고 흥분되는 1:1 맞춤 강연이었다.'나도 저 형처럼 책을 정말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과 '이 세상에는 정말 흥미로운 작가와 책들이 많구나. 알고 싶다'라는 마음을 내게 심어 준 사람이었다.
내게 미우라 아야꼬를 심어 준 누나도 있었다. 그녀는 이슬람 지역 국가에 선교사로 남편과 함께 파송되어현지에서의 삶을 살다가 몇 년 전 중고생 아들과 딸, 남편을 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고등학교 때 교회 도서관에서 나에게 미우라 아야꼬의 책을 선물해 줄 때부터 그녀는 선교에 대한 꿈을 가졌나 보다. 미우라 아야꼬의 극적인 인생과 신앙을 흠모하던 그녀는 <설령>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신앙의 모습으로 타국에서 영혼들을 위해 살았다. 도서관 앞 공원에서 내게 컵라면과 사이다 그리고 <길은 여기에> 책을 주면서 미우라 아야꼬 책의 감동을 전해주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가 내게 배려해 준 그 인생 한 줌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어떤 사람이든 인생은 소중하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욱 간절하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톨스토이 같은 인물들은 글로써 사람마다의 인생을 가치 있게 살라고 전하기 애썼다. 자신이 발견한 삶의 지혜를 인류에 전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모두가 훌륭한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개인마다 주어진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