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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븐 Jun 19. 2022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지 (1)

[인생의 중간즘]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돌아보는 우정


"큰 컴퓨터(뇌)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채워 넣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영장류는 그 소프트웨어를 채우기 위해

아동기와 사춘기에 오랜 학습의 과정을 거친다."

- <프렌즈>, 로빈 던바



본격적으로 일하고 있던 30대 시절에는 거의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었다. 뒤늦은 대학생 생활에 성적이든 배움에 대한 완성도든 최고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지만 외국의 대학생들과 경쟁한다는 마음가짐이어서 절정의 경험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상황적으로 학업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자주 입원하시던 상황이었고, 학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일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과 간호 그리고 학업 생활로 하루 3시간씩 자면서 지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학업-아르바이트-아버지 간호, 이 세 가지 사이클에 숨 쉴 여유도 없었던 상황인지라 자연스럽게 친구들 모임에 참여하기 힘들었고 어느 정도 친구관계는 놓치고 살았던 것 같다.


"야, 너 술 안 마시지? 나 마포에 있으니 저녁에 커피 한잔 하자. 일 끝나면 전화해."

결혼하고 40에 접어들 즈음이 되니까 친구 중 몇몇이 먼저 연락을 주었다. 나는 친구들 모임에는 거의 못 나가서 나를 모두 잊지 않았을까 생각했기에 먼저 연락 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대학 졸업 전부터 시작된 직장 생활은 재미있기도 했지만 난이도 높은 테스크로 인해 고군분투의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더욱 친구들과의 연락은 소홀했다. 그런 와중에 나를 기억해 준 몇몇 친구들이 고마웠다.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에 나갈 때 기대감도 생기고, 신선한 이벤트에 설렘도 찾아왔다.


내가 친구들을 못 만나던 사이에 친구들도 결혼과 출산 그리고 일터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았다. 20대의 친구들은 못 보던 사이 순식간에 40대 중반에 도달했다. 탈모를 겪는 친구들도 생겼고, 나처럼 체중이 늘어 외형이 바뀐 친구도 있었다. 몇몇 친구들에게 종종 개인마다의 소식은 전해 들었으나 잘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하나, 둘 그리고 다 같이 보게 되는 친구들은 친구별 업데이트들로 나름 버퍼링이 생길 정도로 시간은 그렇게 많이 흘렀던 것이다.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는 이런 나에게  모멘텀이 되었다. 코로나 19 기간의 장례는 장례 문화에도 새로운 영향을 주었다. 감염병 때문에 거의 찾아오기 힘든 장례장에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하나, 둘씩 합류하는 친구들을   반갑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했다. 나의  공백기를 다그치는 친구도 있었다. 100% 맞는 말이기에 쑥스러움과 미안함에 사과와 함께 서로 크게 웃었다. 아이는  명이니, 전에 다니던 회사는 그대로 다니니, 어디 사니... 기본적인 업데이트 사항부터 서로 확인한다. 그리고는 어릴  우리들의 이야기로 서로 튜닝을 한다. 멋쩍고 쑥스럽지만 행복한 기억들로 다시 우리들은 친구들임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장례식장이 저녁 늦은 시간부터는 온전히 우리들만의 공간이 되었다.


술잔을 기울기며 밤새 그동안의 얘기들로 자리 뜰 여력이 없었다. 상실감으로 괴로움이 가득한 친구를 옆에 두고 위로하며, 이전의 스토리들로 서로를 되찾는 시간 속에서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모두들 정말 그 자신 그대로를 살았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친구들을 못 보았지만 그 자리 그대로에서 자기네들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한 번도 관계를 끊었다, 또는 잊혔다가 아닌 그동안 서로 못 보았다의 뜻이었다. 나도 내 자리에서 바둥바둥 살아왔는데 나만 잊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겪은 20~30대 인생은 달랐지만 내가 아는 그 친구들 그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장례장의 그 하루를 통해서 우정이라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의 관계라는 것을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친구란 '우연히 술자리나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동석해도 부담이 없거나 당혹스럽지 않은 관계'라고 인터넷 서핑 중우연히 봤다. 깊이 공감되면서 조금 덧붙이자면 어디서 만나든, 언제 만나든 친구 관계는 공감의 자리, 그 자리에서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모두를 위한 자리에 다소 소홀했던 나의 태도를 반성했다. 남은 후반전은 어릴 적부터 쌓아 올린 우리들의 공감의 경험과 시간들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왜? 정말로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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