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간즘] 일 잘러로 도약하는 프로젝트 업무
매년 12월에는 그 해 가장 의미 있었던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큰 경험을 했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우선으로 꼽히는데, 그중에도 가장 애쓰고, 힘들었던 일이 매년 일등이다. 그리고는 매년 신기해한다. 가장 즐거웠던 여행이나 재미있었던 이벤트여야 할 것 같은데 의외로 나의 기억 속에 가장 큰 기억은 찐득하게 일했던 경험이다. 왜 그럴까.
한 해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성장했는가'이다. 나는 올해 무엇을 배웠지? 나는 올해 어떤 변화가 있었지? 나는 올해 계획한 일들을 얼마나 이뤘지?.... 이 모든 것의 원형은 <성장>이다. 그렇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나는 성장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가를 스스로 평가해 볼 때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의미가 있지만 목표한 것들이나 일터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중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입사 초기에 프로젝트를 하나 맡게 되었다. 당시 5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하는 1박 2일 워크숍의 전체 진행을 맡아보라는 프로젝트였다. 매년 진행되는 행사이기에 그동안 추진된 히스토리와 관련 서류들은 충분했다. 의욕이 가득이었던 시기였기에 장소 물색부터 다 같이 진행하는 식사, 재미있는 이벤트에 많은 고민을 했다. 함께 하는 TF 인원과 다양한 아이디어도 받고, 조직 활성화 업체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이벤트와 액티비티들을 조사하고 적용해 보았다. 분주하였으나 매우 신나는 일이었다. 내가 구성한 일정에 50여 명이 그대로 움직이는 2일이란! TF 인원과 함께 늦은 밤까지 액티비티를 준비하고, 연계된 준비물을 챙기고... 회사의 멤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시간을 준비하고 싶었다. 예정대로 워크숍이 진행되고, 하나하나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마다 만족스러워하고 행복해하는 멤버들의 표정을 볼 때 너무나 뿌듯했다. 워크숍이 잘 마무리되고, 리뷰 미팅 시 나온 질문은 나를 더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수고했고 참 잘했다. 근데 너는 무엇을 배웠니? 이 워크숍을 통해서 넌 머가 성장한 것 같아?"
사실 성장하려고 프로젝트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 업무도 열심히, 잘해야 하지만 프로젝트도 잘하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통해서 참여한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추억과 팀빌딩 경험이 되도록 이끌고 싶었기에 그것에 대한 결과만 보고 뛰었다. 그래서 내가 어떠한 것에 성장했냐는 질문은 다소 의외였다. 그런데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본 업무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신입 사원으로서의 Time Management Skill을 향상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시간에 쫓겨서 늦은 밤까지 준비하였지만 어쨌든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셈이 되었다. 일종의 일터에서의 "작은 성공"을 맛본 것이다. 아마 기본 업무만 했다면 밀도 있는 성장의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아주 난이도 있는 프로젝트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한 고객사에서 주재원 대상으로 동일한 날, 동일 시각에 동시 17개의 특강을 진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국가도 달라서 모두 내용이 달라야 하며, 기존의 내용을 벗어나 맞춤형 특강을 희망한 것이어서 17개의 특강 자체를 실제로 모두 개발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일반적으로 특강이라는 것은 고객사 별로 당일 1개 진행이 일반적이고, 아무리 많이 진행되어봐야 2일 정도 연속해서 진행되는 정도이다. 여러 팀이 나눠서 추진하기엔 퀄리티에 대한 리스크가 있고, 커뮤니케이션의 복잡도가 있어 일단 내가 PM을 잡고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강사진 선발부터 특강에 대한 교안 개발 영역까지 주어진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추진했다. 낮에는 기본 업무를 진행하면서 이 특강에 투입되는 강사들을 각각 미팅하고, 시강 받고 피드백하며, 밤에는 교안을 검토-수정하는 작업으로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프로젝트 외에 기본 루틴 업무도 많았던 때라 아직도 밤늦은 시간까지 교안 하나하나 검토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TF 멤버들과 층별로 나눠서 동시 진행되는 특강을 각각 맡아 운영했다. 고객사 담당자는 동시성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도 운영은 이슈 없이 잘 진행되었고, 만족도도 높게 나왔다. 또한 일부 국가 특강에서는 주재원 파견자들에게 적절한 피드백도 나와서 잘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선명하게 각인된 나의 배움이 있었다. 이제 어떤 특강이 주어지든 자신이 생겼다. 제일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사 훈련부터 교안의 완성도까지 어떻게 하면 퀄리티를 낼 수 있을지 감이 왔다. 다음에 유사한 요청이 온다면 더 잘하고자 하는 나름의 시선도 생겼다. 결론적으로 업무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체감하는 아주 뜻깊은 경험이었다.
이러한 맛을 봐서 그런지 16년간 몸담은 일터에서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매번 잘 끝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마다 나 스스로가 무엇을 성장했는지 돌아보는 리츄얼(ritual, 의식 행위)이 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돌아보니 기본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프로젝트를 같이 추진했을 때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다. 실패로 끝난 프로젝트는 부끄럽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의 폭을 넓히고 안 해 본 것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되고, 한정된 기간 내에 마무리를 하는 프로젝트 관리 역량도 쌓을 수 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역량이 <업데이트된다>. 그래서 나는 신입 직원들이나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는 직원들에게는 조직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권장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부담되고 어렵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조직에 기여하고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프로젝트의 성공이든 실패든 나도, 조직도 반드시 <업데이트가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