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븐 Jun 09. 2021

노력해서 잊혀진 친구

<인생의 중간즘> 관계에 대한 솔직함




내겐 잊혀진 친구 J가 있다. 잊혀졌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잊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나를 무척이나 재미있어하고 잘해 주었던 J를 10여 년간 잊고 살았다. 가끔 꿈에 J가 나타나 오롯이 초등학교 때처럼 뛰논다. 너무 좋아했던 농구와 영화 이야기로 가득한 꿈을 반복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J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꿈을 통해서 투영되는가 보다. 처음엔 꿈에도 무관심했는데 마흔의 중간에서 J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J는 미국에 있다. 아니 미국에 있을 것이다. 연락을 끊은 지 10년이 넘어서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여러 SNS를 뒤져서 찾아본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


"왜 말하지 않았니?"

마지막으로 대화했던 J의 말이었다. 우리가 연락을 끊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결정이었다. 돌아보면 당시에 J의 상황을 무시한 체 나의 감정 때문에 관계를 끊었다. 당시 아버지의 병환, 학업과 생계, 여러 문제가 꼬이면서 스스로에 대한 관리도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연락이 끊겼고, 친구들 사이에서 절친으로 불렸던 우리는 그렇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것이다.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감독과 영화 제목, 영화 용어 등 마니아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었다. 미국에 가서도 꾸준히 먼저 연락을 주었고, 영화 신작 비디오테이프와 미국산 제품을 한아름씩 선물 보내는 산타와 같은 친구였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통신 쪽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기쁘게 전화도 해 주었고, 당시 서로 더 많이 연락하자며 처음으로 구글의 G메일을 소개해 주었었다. 지금 돌아보면 J는 삶의 한 부분에서 나를 크게 허용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나 스스로 끊어버린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지금 나에겐 소중한 친구들과 지인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인생의 중간에서 느껴지는 J의 부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것 같다. 갑작스럽게 J가 떠올라 멍하기 옛 추억을 돌아보기도 한다. 노력해서 잊힌 친구가 다시 기억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궁금하다. 결혼은 했을까. 아빠는 되었을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어디에서 살며, 아직도 영화를 즐겨보고 있을까. 여행은 많이 다녔는지, 돈은 많이 벌어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지, 건강한지. 그리고 그 친구도 나를 노력해서 잊고 살고 있는지.


인생의 중간에서 나의 어리석었던 행동도, 나를 아껴주었던 소중한 친구의 마음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상념을 바람으로 한 문장 더 표현해 본다면 햇살 좋은 날에 카페에서 만나 네가 정말 그리웠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4시 반 루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