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거울 앞에 서서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씨름 중이다.
“흰머리가 너무 많아. 으으!”
나이 드는 건 괜찮아도 흰머리는 왠지 싫다.
나는 유독 정수리 너머 뒤통수에 흰머리가 많아, 머리를 하늘로 치켜올려 불빛에 이리 비추고 저리 비춘다.
“사람들이 흰머리 가득한 내 뒤통수 볼 거 아냐? 으으, 정말 싫어, 싫다구!”
한 3개월 전에도 이러다 팔이 너무 아파 결국 염색했더랬다.
오늘은 또 어떻게 결말이 날까.
남편은 침대에 누워 나를 바라보며, “마흔 넘었는데 흰머리 나는 건 당연한 거야. 이제 그만 받아들여.” 한다.
흰머리를 보면 여러 생각이 밀려온다.
정말 그럴까?
남편 말마따나, 나이 들면 흰머리가 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어쩌면 암에 걸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닐까?
나는 아직도 가끔 엄마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반쪽짜리 치유,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가슴 한쪽에 묵직하게 앉아 있다.
불쑥불쑥 이런 궁금증이 떠오를 때가 있다.
암이라는 게, 정말 병일까? 아니면 흰머리처럼 생의 일부일까?
현대의학이 암을 ‘못’ 푸는 게 아니라, ‘안’ 풀리는 건 아닐까? 그냥, 나이 드는 것처럼…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이 흰머리, 하루이틀 있었던 게 아닐 텐데,
내가 ‘발견한 순간부터’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싫어졌다는 게 참 웃기다.
존재는 인식에 의존한다…
칸트였던가, 하이데거였던가, 데카르트? 아아, 버클리였던가?
그 철학자들 말처럼.
그 순간, 내 방 화장대는 스토아 회랑으로 변해버리고_
나는 철학자들과 나란히 걷는다. 흰머리를 들고.
그리고 어느샌가 또 조바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냐고 물으셨던 주례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 둘 다 그렇다고 대답했었는데.
벌써 머리가 세어버리면 안 될 일이야.
남편이 유독 머리가 빨리 하얗게 되기 시작해, 내가 농담으로 “당신, 나랑 사는 거 힘들어서 그래~? 빨리 흰머리 파뿌리 돼서 어디로 가려구~?” 그랬었는데.
근데 나까지 백발마녀가 돼버리면 어떡해.
둘 다 파뿌리 되어버리면… 약속이 너무 일찍 완성된 느낌이잖아.
이건 곤란하지.
나는 남편이랑 사는 게 맨날맨날 재미있다.
남편 뒤에 따라온 옵션들(?)이 피곤해서 그렇지,
이 사람이랑 사는 건 재미있단 말이야.
그러니 안돼. 흰머리는.
흔적도 없이 다 없애버릴 거라고.
#놓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