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픈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사모들의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았는데 출산휴가를 안 준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남편 도움이 너무 필요해서, 죄송하지만 여름휴가를 대체해서 지금 사용하면 안 되겠냐고 요청을 드렸대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네요. 다른 사모님들은 어떻게 하셨냐고 이 어린 사모가 글을 올렸습니다.
글을 보고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 줄줄이 달린 댓글은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출산휴가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어요.
아이 낳은 지 20일 지났는데 장로님이 전화하셨어요. 이제 아기 데리고 교회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옆자리 산모 남편이 보다 못해 제 식판을 들어주셨어요, 제 남편은 출근했거든요.
이 외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댓글로 달려 있었습니다.
자기 딸이었으면 똑같이 하실 수 있었을지, 묻고 싶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 ‘다음 세대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외침은 너무도 공허하게 들립니다.
자동차가 자율운행을 하는 21세기 스마트시대에, 목회자의 복지 처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제자리걸음 중입니다. 놀랍도록 시대에 뒤떨어진 처우를 감내하고 있습니다. 주 5일제가 사회 전반에 시행된 지 십수 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목회자와 사모들만은 열외입니다. 세종대왕 때도 보장되었던 출산휴가제도인 것을요.
더 이상 교회가 사모와 목회자를 부려먹는 구조 속에서 다음 세대를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종교인 과세법이 시행되고 나서 부목사와 전도사들은 훨씬 살기가 편해졌습니다.
목사들의 처우개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모들도, 목회자도, 더 이상 상처받아선 안 됩니다.
이 길은 주님이 부르신 ‘복된’ 길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길이 이토록 아파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사역자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그렇기에 법의 테두리 안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고.
아니요,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다.
레위인들도 분명히 보호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할 것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법으로 보호합니다.
네, 이 길은 헌신으로 가는 길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헌신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역이 거룩한 소명이라 하여도, 소명과 처우는 분리되어 논의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다음 세대가 떠나는 이유를, 단지 프로그램이나 열정의 부족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교회는 다음 세대를 품을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낳은 이의 몸과 마음이 회복될 틈도 주지 못하는 교회는, 진정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사랑받고 용납받아 본 경험이 없는 목사와 사모가 앞으로 누굴 온전히 사랑하고 용납해 줄 수 있을까요?
교회는 ‘가정이 우선이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의 아이가 넘어지면 아빠 목사님은 못 본 체 하고 지나갑니다. 아이는 상처받고 사모님은 냉가슴을 앓지요. 이것이 현실입니다.
아이를 낳는 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저 개인의 부담으로 치부됩니다. 저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습니다.
책임질 일이 있을 때는 목사님 아이니까 제일 먼저,
칭찬받을 일이 있을 때는 집사님 아이들에게 양보하며 말이지요.
그것이 덕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고 저 또한 제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네가 목사 아들인데 앞에 나가서 바른어린이상까지 받으면 진짜 웃기는 거야, 마치 우리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같잖아라고 했어요.
그렇게 15년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옛날에, 상황에 불만 가져봤자 뭐 하겠나,
남편이 나랑 있어주기 싫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걸..
생각하며 그저 견뎌내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처우가 좋은 교회에서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어요. 이곳은 놀랍게도 ‘주일을 포함한 휴가’를 주시는 교회이며, 목사들도 쉼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주신답니다.
네, 이런 말씀 많이 들어보셨다고요?
그렇죠. 이건 참 흔한 얘기예요.
그런데 보통은 아마 ‘담임목사님 본인의 쉼’만을 말씀하셨을 거예요. ‘부목사의 쉼’을 헤아려 주시는 목사님은 저희도 처음 봤으니까요.
그래서 새해가 되면 기도원에 다녀오라고 따로 시간을 주십니다. 성도들과 함께가 아닌 ‘진짜’ 혼자만의 영적인 재정비의 시간 말이에요.
올해부터 월차도 생겼지요. 놀라운 일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요즘 마음이 많이 아픈 것 같습니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를 낳고 계속 혼자 있으면서
처절하게 힘들었지만
그땐 그저 눈앞에 닥친 현실을 헤쳐나가기 바빠
차마 울지도 못했던 나.
내 책을 읽고 화가 나서 잠을 못 잤다는 누군가를 보며, 무엇이 그리 화가 나셨냐고 오히려 반문했던 나.
오늘 아침에
이름 모를 어떤 어린 사모님의 사연을 읽고
예전의 어렸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나는 울지도 못했구나.
처음엔 마음이 아팠고,
이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눈물은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습니다.
오랜만에, 마음껏 울었습니다.
충분히 울고 일어나 밥을 먹었습니다.
따뜻하게, 천천히.
이제는 저처럼 아픈 어린 사모들이 더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 세대를 논하기 전에, 지금의 사람을 먼저 존중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