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학용품 원정대
태풍 '링링'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올 해는 이렇다 할 장마나 태풍이 없었던 것 같아서 링링은 더 크게 다가온다.
태풍에 관한 뉴스와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있으니
올해 3월에 다녀온 볼리비아 학용품 원정대가 생각난다.
학용품 원정대는 내가 속해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구호 비영리단체인 코인트리가 볼리비아에서 1년에 두 번씩 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직접 운영하고 있는 희망꽃학교 외에 주변 19개 마을 약 1000여 명의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해 준다.
아침 7시 이른 아침 출발 준비를 마쳤는데 하늘이 심상치가 않고 현지 선생님들과 코인트리 직원들도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스페인어로 서로 대화하기에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비가 와서 오늘 일정에 차질이 있다는 것은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하지만 한국 직원들이 볼리비아에 출장 온 시간이 충분치가 않고 이미 마을들에서도 우리가 방문하기로 하여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일단 출발은 해보자고 한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에 전화 한 통 해서 일정을 변경할 법도 한데 그 전화조차 연결하기 쉽지 않은 산간마을이다.
우리는 차에 학용품을 가득 실고 일부 선생님은 학용품과 함께 짐칸에 비를 막을 수 있는 방수포를 뒤집어쓰고 출발하였다.
나는 출발 후에 그들이 왜 이리 심각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비포장 도로였고, 해발 3000M 고도에 위치한 마을들이기 때문에 비가 와 도로가 조금이라도 유실된다면 한쪽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도 있는 내가 보기에는 꽤 위험한 여정이었다.
물론, 선생님들과 코인트리 직원들도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조심하여 운전하였지만, 처음 방문한 나로서는 정말 아찔하고 손에 땀이 나는 여정이었다.
약 30분가량 산 자락을 따라 올라가서 길 중간에 차를 세운다.
이곳에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서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있을지는 봐야 하겠다며, 현지 할머니 댁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기다렸다.
30분가량 지났을까 다행히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약해지며 비가 그치고 우리는 학용품을 들고 산기슭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불어난 강물을 이리저리 보며 건널만한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짝 들어가서 확인 후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강물을 건넌다.
강물을 건너서 다시 언덕을 올라가니 이런 곳에 학교가 있을 거라 생각도 못한 곳에 작은 학교가 나타난다.
학생수는 2~30명 남짓 그것도 출석한 친구들은 열댓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준다.
처음에 학용품 원정대라고 해서 차로 15분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근처 학교들을 돌며 학용품을 나누어 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원정대'라는 말은 아주 정확한 표현이었다.
약 10일 동안 가까운 곳은 30분 멀리는 3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학교와 마을들을 돌며 학용품을 나누어 주었다.
심지어 차로 못 가는 곳도 많아서 다시 걸어서 산을 넘는 곳도 있었다.
역시 그곳도 한쪽은 낭떠러지인데 현지 선생님들은 익숙한 듯이 슬리퍼를 신고도 잘 걷는다.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나는 시차에 익숙하지도 않은 채 고산지대에서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체력에 부쳤다..
솔직히 이렇게 까지 해서 학용품을 나누어 줄 필요가 있을까?
그곳도 학교이고 연필 한 자루 볼펜 하나 공책 한 권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학용품을 나누어 주는 이유가 있나요?"
Juan이 대답해 주었다.
"처음에는 희망꽃학교를 짓고 주변 가까운 마을에만 학용품을 나누어 주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소문이 났는지 저 멀리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학용품을 받으러 오는 거예요.
연필 한 자루와 공책을 받으러 4시간을 걸어서 왔다고 했어요.
그리고 다시 4시간을 걸어서 가야 하죠.
그들에게는 이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이 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에요.
이것마저 없다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더 이상 교육을 받을 수도 없어요.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가는 곳들은 정부에서도 지원이 거의 닿지 않는 지역이라 우리가 이렇게 학용품을 나누어 주고 있어요."
"교육만이 그들의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별것 아닌 연필 한 자루와 공책 한 권이 그들에게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현지 선생님들과 코인트리 식구들은 처음에는 차도 없어서 한 달 동안 마을들을 돌기 시작했고,
지금은 차가 생겨서 다행히 더 멀리 있는 마을까지도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들에게는 단순히 학용품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게 할 수 있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러기에 누구 하나 힘들지만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 사단법인 코인트리는 볼리비아와 멕시코 스리랑카 아이들을 위해 교육과 의료지원을 하는 국제구호단체입니다.
홈페이지 www.cointree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