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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게 Mar 12. 2016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다.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2006년 6월

약 2시간 반가량 차를 타고 왔을까?

레프팅의 고장 인제가 보인다. 그리고 20분 가량 더가니 원통에 도착했다.

원통 터미널은 아직도 화목난로를 떼며 한시간에 한대 있는 버스티켓은 어릴적 버스 회수권 같이 생겼다.

화목난로에 옹기종기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풍경은 시대를 다시 거슬러 올라간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작은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들어간다.

이 곳이 내가 2년4개월 동안 생활할 나의 새로운 거주지 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다고 배웠다. 이 곳은 삼면이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360도를 돌아보아도 내눈에는 산밖에 보이지가 않는다.

내가 부임받은 곳은 6.25전쟁때부터 써오던 105mm 곡사포 부대이다. 전문용어로는 소위 똥포라 불린다.(현재는 모두 자주포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부대에서 외로운 통신장교이다.

포병부대의 통신은 별동대이며 가장 중요하기도 하나 외로운 병과이다. 모두 포병인 가운데 나 홀로 통신이다. 포병은 통신이 생명이기 때문에 통신두절은 전투불능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지금까지는 군생활의 짬이 찰만큼 차서 노랗게 된 준위라는 계급이 담당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 부대의 최초의 통신장교이다.

내가 부임하기 일년전부터 보직이 소위급으로 바뀌었고 일년간은 군생활 15년차의 선임상사가 보직을 대행하고 있었다.

이제 갓 다이아몬드 하나 달고 온 나는 그들이 보기에 얼마나 어려보였을까?

내가 쭉 군생활을 했어도 이제 10년차이니 말이다.

어찌했든 군대는 계급이 깡패라고 나는 통신과의 책임자였고 그들은 내 아래 보직으로 부임받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30명의 소대원이 있었다.

밴드오브브라더스를 찍어도 충분한 인원이었다.

그리고 내 군생활의 첫번째 장애물은 15년차의 통신과 선임상사로 결정되었다.


선임상사를 어떻게 구워삶아 내편으로 만들까?


내 첫번째 과제였다.

인수인계를 받을 선임소대장이 없는 시점에서 나는 그의 실무와 경력과 도움이 필요했다.

그의 밑으로 통신과에는 중사 한분과 하사 한분이 추가로 있었지만 그들 역시 선임상사의 지휘아래 있었다. 물론 나를 환영해주고 함께 일을 하였지만 선임상사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선임상사는 이제 강원도를 뜰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으며, 내가 무엇인가 물어보면 "한번 해보세요.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어디있나" 였다.

(정말 8개월 후에 선임상사는 부산의 모 부대로 떠났다.)

삼국지에 보면 유능한자는 적을 만들지 않으며, 무서운자는 적까지도 아군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나는 선임상사를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두가지 계책을 세웠다.


첫째는 일단 할말 없게 만들자.

나는 "한번 해보세요" 라는 말을 못하게 일단 다 해보기로 했다. 그 한테 물어보기 전에 행동으로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선임상사보다 일찍 출근했고 선임상사보다 늦게 퇴근했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당직을 서서 밤을 세도 들어가시라고 할때도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했다.


두번째로 그의 가족을 공략했다.

부대에서 회식은 무조건 남자들만의 시간이었다.

집에 당당하게 얘기하고 밤늦게까지 술을 충분히 마실 수 있는 공식적인 시간 이었다.

나는 첫 회식을 가족회식으로 잡았다.

물론 다들 반발을 하였지만 이제 한식구니깐 인사를 해야한다며 이번만은 양보못한다고 가족들을 다 불렀다.

그리고 아이들과 와이프들의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역시 군인들은 아무래도 가정에 충실한 편이라 와이프와 아이들앞에서는 부드러워졌고, 아내들은 매일 술에 만취되어 집에 들어오는 남편만 보다 함께 저녁을 먹고 술한잔씩 하는 가족회식을 기뻐했다. 군대에서 계급상으로는 부사관이라 존칭을 할 수 없지만 그들의 가족은 나에게 형수님이 되었고 나는 삼촌이 되었으며 십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연락하며 잘지내고 있다.


여튼 나의 전략은 적중했고 한번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인 상사는 예전보다는 딱딱하지 않았으며, 약 3개월이 지나가니 먼저 나를 도와주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번째 장애물은 뛰어넘게 되었다.


3월이니 이제 막 임관한 소위들이 부대에 배정받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다. 혹시나 부사관들과의 마찰이 있고 강대강의 입장이라면 사석에서 가족들에게 신경을 써줘보자.

이 방법은 생각보다 효율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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