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쓰는 쫄보 부부의 유럽 신혼여행 #3
비몽사몽인 상태로 첫날의 설렘을 가득 담은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기에서 빼냈다.
두 번째 날의 시작이다. 설렘과 두려움 사이에서 고민하던 어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설렘과 즐거움만 남은 우리는 발걸음조차 경쾌해지고, 전날 지나가다 스쳐 지나간 가게도 괜히 익숙해 보였다.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마치 첫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겉으로는 덤덤한 척 "이제 구엘 공원으로 갈까?"라고 말하니 "그래! 24번 타면 돼!"라고 말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어딘지도 모르는 구엘 공원으로 출발했다.
구엘 공원으로 가려면 카탈루냐 광장에서 24번을 타야 한다. 숙소에서 블로그를 한참 검색하며 찾은 정보였는데 별생각 없이 출발했다. 그나마 숙소의 위치가 람블라스 거리의 중간쯤 위치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또 몇 번을 헤맸겠지.
자신 있게 자기가 김 네비라고 떠드는 아내는 재촉하는 내게 구글맵을 당당히 보여주며 자기만 따라오란다.
구엘 공원으로 가는 24번을 타러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고풍스러운 애플 스토어의 자태를 보고 앱등이인 내가 그냥 지나칠쏘냐. 하지만 오픈을 안 해서 들어가진 못하고 사진만 연신 찍어대다 보니 버스를 두어 대 놓친 것 같은 느낌.
24번 버스를 타고 가면 30분 정도를 가면 구엘 공원이 나온다길래 창 밖을 바라봤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지만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택이나 빌딩에 쓰여있는 준공연도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1800년대, 1900년대 너 나할 거 없이 멋지게 들어선 건물들을 보니 꽤 존경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구엘공원에 다다랐다.
다행히 오픈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어서 붐비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구엘 공원에 도착해서 우리는 그 유명한 타일 의자에 앉았다. 아침 공기에 약간 차가워진 의자에 앉으면서 저 멀리 펼쳐진 지중해의 모습이 내 마음을 뺏는다. 의자는 편안하지 않았지만 그 감촉과 색감이 예뻤다.
나무 위키에서 외운 정보들로 아내에게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지만, 사실 그런 정보보다 그냥 이 곳에 있는 모든 것에 심취해 있었다. 구엘 공원은 정말 이름에 걸맞게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걸을 수 있었다.
구엘 공원이 이토록 편안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구엘 공원은 주택들이 들어설 단지였지만 자금난과 전쟁 그리고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바르셀로나 시 관할로 넘겨지게 되어 시립 공원으로 남게 된 곳이다.
외부적인 이유로 초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실패한 것이나 그 실패 덕분에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을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가혹하게도 목적엔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론 성공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이 곳은 도무지 허튼 구석이 없었다.
구엘 공원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원이다. 그런데 자연을 가득 담아냈다. 정보를 달달 외우고 가지 않아도, 가우디를 몰라도 괜찮았다. 그저 구엘 공원을 걸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체감하며 이 느낌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이 구엘 공원을 즐기는 포인트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에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걸었던 구엘 공원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결혼 전, 너무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생긴 피로감 덕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이 구엘 공원. 나는 이 구엘 공원이 좋았다.
이 아름다운 편안함 속 시간의 흐름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게 되더라. 물론 그러다가 다음 일정에 늦을 뻔했다. 하지만 즐거운 기분이 온몸을 뒤덮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