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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Jul 04. 2022

묵직한 한 방이 있는 맛, 라이카 M11

나의 첫 라이카 사용기

이 녀석의 첫인상은 꽤 부담스러웠다. 비싼 금액과 바디에 붙어있는 빨간 라이카 로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라면 '라이카'라는 단어에 대한 로망이 있다. 비싼 금액 탓에 렌탈샵 등에는 찾아볼 수 없고, 주변에 누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정말 찾아보기도 힘든 카메라다. 


라이카에서는 전통적으로 'P 라인'에 개선된 성능과 높은 화소수를 넣어주곤 했는데 M11에 와서는 P 모델이 아님에도 6천만화소라는 고화소를 탑재했다는 거다. 고리타분한 브랜드, 변화가 거의 없는 브랜드라는 선입견이 오랫동안 자리했던 것만큼 놀라울 일이었다. 사실 고화소의 탑재 말고도 기존에 사용되던 하판에서의 배터리 교체 방식의 변화 등의 소소한 변화가 돋보이는 모델이라 라이카를 써오던 유저들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포인트다.



라이카는 빨간 딱지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심플함이 주는 정교함이 돋보인다.


이번 M11로 오면서 경량화된 바디가 눈에 띈다. 정확히 말하면 '블랙'모델만 경량화가 됐다. 황동이라는 재질 특성상 블랙 아노다이징을 채택할 경우 덧칠을 추가로 해야 되는 부분 때문에 황동이 아닌 알루미늄을 적용했다고 한다. 황동을 채택하지 않은 건 아쉽지만 실버 대비 110g의 무게를 경량화했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아쉬운 건 재질에 따른 가격 차이가 없다는 점. 고급스러운 감촉의 황동이냐 가벼워진 무게냐를 고르게 만드는 건 야속하다.


블랙 바디는 경량화를 거쳤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틱하게 가볍다는 느낌을 기대하지 않길 바란다. 가벼울 것 같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묵직한 느낌이 든다. 셔터마저 묵직해서 몸으로 전달되는 체감상 무게는 원래 무게보다 더 많이 느껴지게 된다. 그럼에도 라이카는 꺼내 들고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 Range Finder라는 특성상 초반에 감각을 익혀두지 않으면 내가 촬영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놓치기 십상이다. 진짜 사진에 집중하지 않고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툭툭 찍기에는 너무 촬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FUJIFILM X-PRO 2 + XF 35mm F2 R RW


라이카를 한 번이라도 관심 가졌던 이는 다 알겠지만 M바디에서는 AF도 되지 않는 데다 MF도 광학식 뷰 파인더에서 이중으로 보이는 상을 하나로 합치는 '이중 합치'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방식으로 초점을 설정하기에 꽤나 불편하다. 요즘 미러리스에서는 후지필름의 X-PRO 시리즈처럼 광학식 + 전자식 뷰파인더를 지원하면 더욱 편하겠다 싶지만 라이카를 좀 더 써보니까 그들의 고집이 충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이 없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데 내 생각과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조작을 할 때도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행위에 집중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피사체가 될 만한 걸 찾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피사체에 집중을 하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라이카는 감성만 가득한 줄 알았더니 찍어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미지 표현하는 퀄리티가 좋았다. 라이카는 기존에 무보정 샘플들을 보더라도 그 퀄리티가 꽤 높다고 생각했왔는데, M 시리즈에서 사용하는 '마에스트로'라고 불리는 라이카만의 이미지 처리 프로세싱 덕을 많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라이카 M11에서는 이 마에스트로 프로세서가 III가 되었고, 전작과는 달리 BSI 이면조사형 CMOS 센서를 사용했다. 이 삼중 해상도 센서를 통해 고화질은 물론, 올드 렌즈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확실히 실용 감도의 영역도 늘어나고 저조도, 암부의 디테일한 표현이 도드라진다. 또한, 어둡고 촬영해도 보정 시에도 넓어진 DR을 느낄 수 있다. 라이카가 독자적인 기술로 성능을 어필하다니. 어쨌든 기존 유저들에게는 강력한 구매 포인트가 될 것 같다.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이 값비싼 라이카에는 빠른 무소음 30 연사 기능이나 4K 동영상 촬영 같은 화려한 기능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화려한 기능보다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셔터의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카메라를 들면 사진 찍는 게 더 재밌게 느껴진다.


신기하다. 15살 때부터 내가 재밌어서 시작한 사진이지만 가장 큰 슬럼프가 왔을 때 이걸 만지고 다시 심폐 소생되는 느낌이란. 이런 비싼 쇳덩이가 크나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사양보다는 사진에 대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재밌는 카메라다. 한 컷 한 컷 촬영할 때마다 LCD로 일일이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보다는 다음 피사체에 대한 시선을 떼지 않게 된다. 그만큼 여러 환경에서 온전히 나를 분리시킬 수 있다.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Leica M11 + APO Summicron-M 50mm f/2.0 ASPH


이렇게 촬영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낀 라이카는 사람을 중독시킨다. 사진 찍는 행위에 집중하게 만들어주고 셔터를 누를 때의 청각과 촉각까지 만족스러워진다. 가격 따위는 잊고 사진 찍는데 정신 팔리게 만드는 카메라랄까.




하지만 이렇게 좋다고는 하지만 구매를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카메라라는 물건이 만능일 것 같지만 쓰는 사람의 목적과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는 기기다 보니 명성과 브랜드, 나만의 감각으로만 생각해서는 잘못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라이카는 확실하게 비싸고, 기기적 성능의 지향점이 다르고, 한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사용 목적이나 촬영 스타일이 맞는다면 단연코 실망하진 않을 카메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묵직한 한 방이 주는 울림이 잊히지 않는 카메라면서 내가 사진을 찍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카메라는 여태껏 없었다. 이런 라이카 고유의 장점과 더불어 M11은 고화소의 장점, 라이카치고는 진일보된 사용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왕 라이카를 구매한다면 M11은 좋은 선택이고, 사진 생활에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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