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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Jan 18. 2024

우리 오늘부터 1일

남편의 육아일기#1. 금사빠도 아닌 나를 5분 만에 홀린 그 녀석.

아이가 태어나면서 체크하고 할 일이 많아졌다. 원래 나의 성격은 계획을 극단적으로 하지 않는 순도 높은 P지만 내 삶이 아니라 아이의 삶을 위해서 준비한다 생각하니 저절로 계획이 세워졌다. J성향을 가진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또 J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지?" 하며 킥킥 웃어대서 같이 웃어버렸지만 사실 나는 진지하다.


그런 웃음 섞인 반응에도 진지해진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 두 번 주어지는 아이 면회시간, 작명소, 이후에 다녀올 동사무소, 출생신고, 전기료 감면, 각종 지원혜택 신청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해내야 하기에 여러 가지 동선을 체크해 보고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상상 속 나는 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빈틈없는 남자였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내 모습을 비교하던 도중 아이의 첫 면회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이 면회시간이 10분 전으로 다가오는 게 얼마나 임팩트가 컸던지 모든 생각이 증발되어 버렸다. 아내도 보고 싶었겠지만 거동이 불편해서 가지 못해 일단 나만 가기로 했다. 대신 영상 잘 찍어 오겠노라 말하며 마스크를 쓰고, 목걸이를 차고 신생아실로 향했다.


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던 출생 당일에는 우느라 경황이 없어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들 한다는 아이와의 탄생 순간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간호사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만 두 장 찍었다. 그래서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본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려서 호흡까지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얼른 담기 위해서 휴대폰을 들었다.


아이가 곤히 자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고, 나는 그 모습을 얼른 촬영했다. 아이를 보면서 촬영하니 나도 모르게 점점 손은 내려가고 아이를 향해 나아가는 고개 탓에 구도가 유지될 리 없었다. 신생아실로 내려가면서 아내와 집안 어른들에게도 보여줄 요량으로 잘 찍겠다는 마음은 어느새 까먹고 헤헤하면서 실실 쪼개는 내 모습이 꼴사납지만 그래도 좋은 걸. 나는 금사빠도 아닌데 5분 만에 사랑에 빠진 것만 같다. 우리 오늘부터 1일이다.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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