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터프쿠키 Mar 20. 2016

뻐그러진 3월

얼마 전, 올해 들어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졸업 후 지금껏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통틀어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결론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꼭 번역하고 싶어서 공들여 기획한 책을 출판사에서 받아줬는데 책만 받아주고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써도 구질구질해서 차마 못 쓰겠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한건가 보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검토서를 한참 쓰던 때에도 이런 적이 있긴 했다. 다만 그땐 내가 직접 선택한 책이 아니라서 애착이 아주 크지도 않았고, 몇 년 뒤 문득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책이 나와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노벨상 수상자 집안의 학식 있는 저자가 인류의 행복에 대해 논하는 정말 고매한 책이라서 어차피 내 깜냥으로 맡으면 안 되는 거였다. 


출판사에서는 원래 이런 일이 자주 있는거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내가 생각해도 뭐 세상 일이 얼마나 공정할까 싶다. 겨우 이 정도 일에 충격 받는 건 그만큼 내가 너무 좋은 클라이언트들에 둘러싸여 있어서일 수도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할 동지가 한 명도 없다는 거다. 같은 일을 하는 선배나 동료가 있으면 자세한 사정도 털어놓고 경험담도 듣고 그럴 텐데 아는 사람은 커녕 인터넷 카페 하나 제대로 가입해 놓은 곳이 없다. 이 점은 이번 일과 별개로 반성하고 변화를 도모해보려고 한다.


속시원하게 울고 남자친구와 맛있는 오땅비어 오징어튀김을 먹으며 속을 풀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만나서 처음으로 그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나: 시인 할까...

남자친구: 시 쓰면 돈 벌기 힘들잖아 

나: 노벨상 타서 상금 받으면 되지! 


그랬더니 정말 풉! 하고 웃었다.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뭐든지 격려해주더니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하나. 수상소감에서 언급해주나 봐라 나쁜 놈.


어찌됐건 내가 예상했던 올해의 그림 한 구석이 크게 뻐그러졌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망친 부분을 더 예쁘게 고칠 다른 방법을 찾는 거다. 아직 소인에게는 열 두 가지..까지는 아니지만 재미 있는 계획들이 몇 가지 더 있으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브런치에 번역하시는 분 있으면 친구할까요 ☞☜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고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