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던 일들이 끝났다.
지난 2월 말인가 3월 초부터, 계속 '이 일만 끝내면 한가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일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생기고, 그렇게 오늘까지 일을 하고 드디어 모든 일을 끝냈다(일단 오늘 밤까지 상태로는 그렇다). 후련한 마음에 여유롭게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듣고 싶은 강연이 보여서 날짜를 확인하니 다음 주 목요일. 아 그런데 분명 목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다른 약속을 생각하면서 '목요일만 아니면 돼'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그 목요일이 지난주였는지 다음 주였는지 생각나질 않는다. 내가 헷갈렸나 보지 하며 다이어리를 꺼내보니 맙소사, 그 목요일은 바로 이번 주 목요일이었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어서 몇 달 전부터 예매 오픈 시간에 맞춰서 알람까지 맞춰서 꼭두새벽에(내 기준) 기상해가며 표를 사둔 그 공연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이미 자정을 넘겨 금요일이 되어버린 바로 지금. 공연장에서 예매 알림 문자가 왔었다. 그게 언제였는지 확인해보니 월요일. 문자를 바로 전 날 한 번 더 보내주면 안됐던 걸까? 공연을 예매해두고 이렇게 깜빡해서 놓쳐버린 건 딱 두 번째다. 12년 전에 딱 한 번 예매 날짜를 다음날로 착각하고 있다가 공연 당일 밤에 그 사실을 깨달아버리고 충격에 빠졌을 때. 그리고 12년 만에 또 이런 일이 생겼다.
꼭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어서 아깝긴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너무 날짜 감각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지내왔다는 자책이 더 크다. 요즘이 한 달의 중순인지 말인지,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는 관심도 없고 날짜는 '마감으로부터 며칠 전'으로서의 의미밖에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오늘은 정말 일을 다 마칠 수 있겠다고 기대한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공연장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내 방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내일 마쳐도 되는 일을 굳이 미리 끝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일을 끝내긴 했다는 걸 그나마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연만이 아니라 봄날의 벚꽃이라든가 타인과의 교류라든가 하는 것들까지 다 놓치고 하루하루 마감만 보고 지낸 것 같아 속상하다. 타인과의 교류는 정말 심각하다. 믿는 구석인 가족과 남자친구가 없이 이렇게 생활했다면 나는 지금쯤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말이지 기지개를 켜고 거리로 나설 시간이다. 마감과 관계없이(마감이 없는 건 큰일 날 소리) 끊임없이 일이 있는 생활 속에서 내가 생활의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하는 거다.
내일은 동사무소에 미뤄뒀던 볼일 보러도 가고 운동복도 살 거다. 다음 주에는 조카 보러 언니네도 꼭 가야지. 강아지 미용도 시켜줘야 한다. 휴대폰은 정말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의욕이 안 생기지만 그래도 알아볼 거고. 취침 시간도 좀 앞으로 당기고. 그리고 오늘 놓친 공연은 일요일까지 하고 다행히 자리도 많이 남아있으니 표를 새로 사서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