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터프쿠키 Apr 22. 2016

날짜 감각을 잃다

바쁘던 일들이 끝났다.

지난 2월 말인가 3월 초부터, 계속 '이 일만 끝내면 한가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일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생기고, 그렇게 오늘까지 일을 하고 드디어 모든 일을 끝냈다(일단 오늘 밤까지 상태로는 그렇다). 후련한 마음에 여유롭게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듣고 싶은 강연이 보여서 날짜를 확인하니 다음 주 목요일. 아 그런데 분명 목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다른 약속을 생각하면서 '목요일만 아니면 돼'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그 목요일이 지난주였는지 다음 주였는지 생각나질 않는다. 내가 헷갈렸나 보지 하며 다이어리를 꺼내보니 맙소사, 그 목요일은 바로 이번 주 목요일이었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어서 몇 달 전부터 예매 오픈 시간에 맞춰서 알람까지 맞춰서 꼭두새벽에(내 기준) 기상해가며 표를 사둔 그 공연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이미 자정을 넘겨 금요일이 되어버린 바로 지금. 공연장에서 예매 알림 문자가 왔었다. 그게 언제였는지 확인해보니 월요일. 문자를 바로 전 날 한 번 더 보내주면 안됐던 걸까? 공연을 예매해두고 이렇게 깜빡해서 놓쳐버린 건 딱 두 번째다. 12년 전에 딱 한 번 예매 날짜를 다음날로 착각하고 있다가 공연 당일 밤에 그 사실을 깨달아버리고 충격에 빠졌을 때. 그리고 12년 만에 또 이런 일이 생겼다. 

꼭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어서 아깝긴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너무 날짜 감각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지내왔다는 자책이 더 크다. 요즘이 한 달의 중순인지 말인지,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는 관심도 없고 날짜는 '마감으로부터 며칠 전'으로서의 의미밖에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오늘은 정말 일을 다 마칠 수 있겠다고 기대한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공연장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내 방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내일 마쳐도 되는 일을 굳이 미리 끝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일을 끝내긴 했다는 걸 그나마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연만이 아니라 봄날의 벚꽃이라든가 타인과의 교류라든가 하는 것들까지 다 놓치고 하루하루 마감만 보고 지낸 것 같아 속상하다. 타인과의 교류는 정말 심각하다. 믿는 구석인 가족과 남자친구가 없이 이렇게 생활했다면 나는 지금쯤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말이지 기지개를 켜고 거리로 나설 시간이다. 마감과 관계없이(마감이 없는 건 큰일 날 소리) 끊임없이 일이 있는 생활 속에서 내가 생활의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하는 거다. 

내일은 동사무소에 미뤄뒀던 볼일 보러도 가고 운동복도 살 거다. 다음 주에는 조카 보러 언니네도 꼭 가야지. 강아지 미용도 시켜줘야 한다. 휴대폰은 정말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의욕이 안 생기지만 그래도 알아볼 거고. 취침 시간도 좀 앞으로 당기고. 그리고 오늘 놓친 공연은 일요일까지 하고 다행히 자리도 많이 남아있으니 표를 새로 사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업 시간 분배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