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xx년 빠른 1월생 경희를 떠올리며
어느 순간부터, (아마 성인이 된 이후) 문득 아무 맥락도 없이 엄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종종 생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생각의 마무리는 용광로에서 펄펄 끓는 쇳물로 녹고, 망치질 당하고를 반복하여 만들어진 철, 쇳덩어리를 떠올리는 것으로 끝난다.
엄마는 서울에서 태어나, 공부를 아주 잘했고,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을 하고, 취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고 그 이듬해에는 첫 딸인 나를 낳았다.
그 딸이 태어나기 직전까지 출근을 했고, 출산 이후에도 일을 열심히 했다. 악바리였다.
평일에는 딸을 친정에 맡기고, 금요일 저녁에 데려와 일요일에 다시 맡기러 가면서 엄마는 늘 울었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에 데리러 올때면 엄마를 못알아 보고 안가려고 했기 때문이란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엄마는 그렇게 모든 것을 너무 잘 해온 사람이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가면서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이후에는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결국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몇년이 흐르고 남편의 사업이 망했다. 그는 한동안 폐인이었고, 집을 팔고 빚을 지고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된다.
내가 돌이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돈이 없는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아집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나도 가정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라고 말하긴 싫었다. 하지만 좋게 좋게 생각하려해도 아빠는 너무한 부분이 많았고 그것 때문에 엄마가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는게 슬펐다.
나의 엄마는 가정뿐만 아니라 본인을 생각할 줄 아는게 좋았다. 본인의 일이 있는 것도, 도전하는 것도 모두.
그런 엄마가 포기하는게 생기면서 나는 슬퍼진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가끔 미안하다고 한다. 자신이 데려오지 않았다면 하늘에서 어쩌면 가장 순수한 영혼으로 존재했을 수도 있는 나를 실존하는 유한의 삶으로 데려와 고통받게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한다.
그 대화는 눈물 나는 순간들로 내 안에 쌓이고, 정말 나를 왜 낳았어? 묻고 싶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밖에도 애 키우는게 처음이라 몰랐어 너무 서툴렀어 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순간들을 포함하여 엄마와의 대화는 내 안에 그득히 쌓여 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엄마를 이해할 수 밖에 없어진 것이다.
고작 서른 해도 살지 않은 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남은 수십년의 시간은 엄마를 이해하는 데에 불필요한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2021년이 되었다.
엄마가 나를 낳고, 키우던 나이에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은 상태로 그저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저 존재함으로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나의 엄마. 나의 철의 여인.
그를 위해 더 열심히, 일단 살아야겠다고 오늘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