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낮과 밤이 다른 그녀"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좋아하는 배우인 이정은 님과 정은지 배우의 케미가 아주 찰지고 맛들어져서 보는 내내 유쾌하다. 2화쯤인가... 정은지 배우가 8년 간 공부하던 공무원 책을 불태우며 엉엉 우는 장면이 있다.
" 내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단 하루도 열심히 안 한 적이 없는데.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쉰 적 없이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근데 결과가 왜 이모양이고.
왜 내만 이 모양 이 꼬락서니고"
그러게 말이다. 나도 진짜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진 내가, 인생에서 죽을 둥 말 둥하며 애 둘 데리고 먼 타지에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건 안되더라. 2년간 나를 갈고 갈아서 했는데도 그 결과에 뭔가 이렇다 할만한 '성과'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허탈했는지. 얼마나 허무한지.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쏟아지는 걸 보면 그 마음이 단순히 허무하다, 허탈하다는 단어로는 압축될 수 없을 것 같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까?
1. 중학교 때 한 번에 평균이 10점이 올랐던 적이 있다. 평균이 80점대였던 내가 중간고사에서 평균 90점대로 확 뛰어올랐는데,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는구나를 느꼈던 시점이었다. 나는 참 열심히 하는 애였다. 반면 우리 오빠는 소위 '머리가 좋은' 아이였는데, 나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훨씬 적어도 늘 전교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로 꼽혔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좀 불공평하다고 느꼈지만 그냥 오빠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구나, 집중력이 좋구나 하는 정도로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꾸준히 열심히 하게 된 계기는 엄마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매일 게임만 주구장창 하는 오빠를 불러다 앉히고 혼을 내셨다. "너 이러다가는 성적이 한순간에 떨어져. 네 동생 봐라. 쟤가 지금은 성적이 너보다 덜 나와도 저렇게 열심히 하면 결국에 오른다." 방 안에서 저 말을 듣는 순간 힘이 났다. 그리고 내가 오빠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는 사실에도 용기가 났다. 꾸준히 하면 뭔가 될 것이라는 걸. 성적 발표가 있었던 날,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나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반에서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아이'로 유명하던 나였기에, 반 친구들이 내 성적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2. 고등학교 때 반에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간혹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큰 물'에서 놀 수 있다는 사실을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영어 시간에 영어 선생님과 프리 토킹을 하는 것이 얼마나 멋져 보이고 부럽던지. 그들의 본토 발음은 또 어떤가. 와, 저건 교과서 영어 테이프에서나 듣던 발음인데! 정말 신기했다. 나도 저런 발음을 낼 수 있을까? 나도 저 친구들처럼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매일 영어 교과서의 테이프를 듣고 따라 했다. 공부라기보다는 재미로 했다. 생각해 보면 영어를 배운다라는 개념보다는 그저 발음을 흉내 내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영어 교과서가 자동으로 외워지고, 선생님이 "오늘 며칠이지? 23번, 16페이지 읽어봐"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유창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 페이지를 읽고 나니 반 친구들이 모두 나를 돌아보며 "와... 너 외국에서 살다왔어?" 했다. 그때의 뭔지 모를 희열과 당황스러움, 놀라움, 뿌듯함, 기쁨 등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는데 가장 큰 감정은 바로 '자랑스러움'이었다. 나는 외국에서 살다오지도 않았는데 본토발음과 비슷하게 낼 줄 아는구나. 그 어려운 것을 내가 해냈구나!! 노력하면 이 어려운 것도 해낼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
학창 시절의 꾸준한 노력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열심히 해도 되는 일보다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았다. 열심히 한 것에 비해 성적이 뛰어나게 좋지는 않았으며, 수험생 신분에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주말에는 놀았던 오빠의 성적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회사 다닐 때는 학창 시절보다 '열심히'의 대상과 기준이 애매해졌는데, '일을 열심히 한다'의 의미는 내게 주어진 업무를 단순히 '끝냈다'라는 것에서 '어떻게' 끝냈느냐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보고서를 기한 내에 제출을 했는데, 그 기한 내에 알아서 여러 선배들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을 하고, 상사에게 중간 보고도 하면서 진행을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의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보고를 어느 타이밍에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눈치를 챙기는 것 등등이 포함되었다. 즉, 학창 시절보다 나 혼자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지고 그 성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변수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했으나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면 내가 그것에 대해 뭐라도 할 말이 생기고, 무엇이 됐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좋은 영향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아주 열심히 했으나 이루지 못한 목표에 큰 좌절을 겪은 나는 앞으로 '열심히 한다'라는 의미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열심히 한다는 것이 과연 앞으로도 의미가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일까? 열심히 산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삶은 더 복잡해지고, 책임져야 할 역할이 늘어나면서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어렵고 늘 방황한다. 무엇이 맞는지,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하는지 또렷한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누군가는 '인생은 과정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생은 무엇을 위한 과정이란 말인가. 나이 40이 되어서도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성과지향적인 사회에서 나아지고 길들여지고 학습되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몸에 힘을 빼고 '덜 열심히'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앞 뒤, 좌 우를 한번 둘러봐야겠다. 내가 너무 열심히 하느라 놓친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생각해 온 '열심히'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