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돌아와 친정집에 짐을 풀었다. 바로 다시 집을 구해서 나갈 요량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반년이 넘게 친정 부모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이것 또한 내 계획에 없던 것이었는데... 누군가가 말했듯이 '살면서 가장 멍청한 일은 계획을 세우는 일'인 것일까. 지난 세월 동안 파워 J의 삶을 추구해 온 나로서는 요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로 인생의 최선은 결국 '벌어진 일에 대처하고 현 상황에 적응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결혼을 하고 친정과 같은 동네에 신혼살림을 차렸었다. 워킹 맘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친정 찬스를 쓸 요량으로. 다행히 우리 아이들이 첫 손주들이었던 친정 부모님은 흔쾌히 노년 육아에 뛰어드셨고, 덕분에 나는 친정과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8-5제 근무가 당연했던 시절이라, 내가 아침 7시쯤 집을 나설 때 친정 아빠가 우리 집으로 오셔서 아이들이 깰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아이들이 깨면 친정으로 데려가셨었다. 그리고 나는 퇴근하자마자 친정에 들러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엄마 아빠와 몇 마디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친정 엄마도 힘이 드셔서 내가 퇴근하면 빨리 아이를 데리고 갔으면 하는 눈치셨고, 그러다 보니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더 멀어졌다. 엄마와 나 모두 일상이 바쁘고 힘이 드니 얼른 각자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친정 부모님과 가깝지만 정서적으로 소원한 상태로 몇 년을 지내다 스웨덴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리 잡을 거란 나의 계획과 다르게 아이들과 친정 집에 '얹혀'지내게 되었다. 출가를 한 이후에 나는 절대 나의 부모님과 다시는 한 집에 같이 살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난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았고 특히 친정 엄마하고는 정말 친구처럼 지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같이 살기가 어렵다고 느꼈던 건, 나에게도 살림 취향이라는 게 생겼고, 엄마와는 여러모로 살림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 엄마는 무조건 쟁이고 보는 '맥시멀리스트'이고, 나는 되도록 먹을 만큼만 사고 냉장고나 서랍에 여유를 두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친정집 냉장고와 서랍을 열 때마다 '헉'소리가 난다.
처음에 몇 개월만 지내고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엄마의 살림을 건드리지 않았다.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팬트리와 냉장고를 볼 때마다 차라리 안 봤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사실 엄마는 왜 살림을 이렇게 하는 걸까? 왜 정리를 잘 안 하지? 하며 엄마 탓을 하기도 했는데, 엄마와 몇 개월 살다 보니 그건 나의 거만하고 알량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살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늘 나의 엄마이고 나는 늘 엄마의 딸이라서 난 엄마가 늙는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냥 엄마는 그 자리에서 계속 있을 거란 생각만 해왔지, 우리 엄마가 벌써 70이 넘은 노인이구나를 한 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서 우리 엄마의 24시간을 보고 있으니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앞으로 많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에도 없던 친정부모님과의 동거가 불편해서 얼른 나가야지 했던 생각이, 지금은 엄마 아빠의 노년을 마지막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이 내 계획을 훼방 놓을 때마다 나는 철저하게 계획하고 노력해 온 나에게 왜 이러느냐며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마다 인생은 내가 한 곳만 바라보느라 보지 못했던 다른 길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노인이 된 엄마 아빠를 옆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시리지만 잘 지내봐야겠다. 그리고 인생이 나의 계획을 훼방 놓을 때마다 조금만 속상해하고 인생이 나에게 또 무엇을 선물할 것인지를 기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