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어머니는 80이 훌쩍 넘은 연세에 혼자 살고 계신다. 요즘은 80이 넘고도 활기 넘치게 사시는 노인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시어머니의 MBTI를 굳이 따지자면 극 E 성향이 되시겠다. 젊은 시절에는 가보지 않은 나라를 찾는 게 빠를 정도로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셨고 연세를 드시면서는 국내를 부지런히 다니셨다. 하루도 집에 계시는 일이 없어서 홀로 세탁소를 하셨던 아버님은 배달이라도 다녀오려면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가게를 비우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는 외향적인 성격에 걸맞게 친구도 많고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도 많다.
그렇게 활기차게 지내시던 어머니가 언제부터인지 외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에 살다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고 또 귀찮기도 해서인지 부쩍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활동적이었던 어머님이 집에만 계시는 걸 보면 왠지 찡한 기분도 든다.
그렇게 집에만 계시다 보니 쓰레기를 그때그때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일이 늘어났다. 남편은 지나는 길에 들러서 어머니가 모아 둔 재활용 쓰레기를 몽땅 우리 집으로 가져온다.
처음에는 거기서 그냥 버리지 굳이 집에까지 가져오냐며 핀잔을 줬지만 주택이라 분리수거가 까다로워서 그냥 들고 오는 거라고 했다.
"어머니 쓰레기 버리러 일층에 내려오기도 힘들고 또 계단이 위험해서 그래."
이렇게 말하며 남편은 내게 또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내민다.
"어머니가 직접 버린다고 가져가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시는데 그냥 무시하고 갖고 왔어."
"네, 네. 참 잘했어요."
그런 남편의 뒤통수를 쓰다듬을까 아니면 손바닥으로 때릴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난 남편이 내민 쓰레기를 남편의 얼굴이 아닌 베란다에 풀어헤쳤다. 대부분은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였다.
하나하나 풀어서 다시 분리수거를 하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쓰레기 중에 유독 영양제 껍데기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다.
뭐 홍삼이야 사 드린 거라 잘 일고 있다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정체불명의 영양제 포장지가 끝도 없이 나왔다.
종합 비타민을 비롯한 액상 마그네슘, 아연, 마분말, 단백질 분말, 눈 영양제, 여주추출물, 나토키나제등 하루치의 영양제 껍데기들이 한 묶음씩 묶여있었다.
문제는 모두 처음 보는 브랜드의 조잡한 포장지라는 거였다. 자식들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다니는 노인상대의 행사장에서 사들인 물건이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스스로 몸을 챙기고 계신 어머님이 떠올라 난 웃음이 났다.
자식들이 뭐 사드린다고 할 때는 싫다고 하시더니 스스로 이렇게 챙겨 드시고 계셨구나. 그 사실이 무안해서 아들이 쓰레기를 가져가려 하자 가져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셨구나.
그러면 지난주에 울면서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씀도 거짓말이었구나 깨달았다.
지난주 어머니는 울며 내게 말씀하셨다.
"네 아부지가 나 좀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왜 안 데려가는지 모르겠어. 그냥 죽었으면 좋겠는데."
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런 말씀 마시라고 위로해 드렸었다.
그리고 이왕 드시는 거 알고 있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다시 사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