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둘 Jan 19. 2024

우리 집에 귀신이 산다.

몇 년 전 우리는 집을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했다. 

10년이 넘어가면서 여기저기가 망가지고 낡았기 때문이다. 바닥과 화장실, 주방, 현관을 모두 고쳤다. 이사를 하지 않고도 새집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후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샤워를 할 때였다. 사실 난 혼자 있을 때 샤워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럴 때면 좀 무서운 생각이 든다. 역사상 가장 무서운 영화 중의 하나로 꼽히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의 샤워장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도 모르는데 샤워할 때면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감을 때면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이 혹시 피를 닮은 붉은색은 아닌지 샴푸칠을 상태에서도 찡그리고 눈을 떠서 번씩 확인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참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다. 다행히 붉은 물이 나왔던 적은 지금껏 번도 없었다.


그날도 뜨거운 물을 잔뜩 써서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찼고, 난 머리에 샴푸칠을 하고 눈을 꼭 감은 상태였다. 눈을 감고 '내일은 브런치에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하면 오죽 좋으련만, 다시 스멀스멀 내 머리로 떨어지는 샤워기의 물색깔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꾸릉꾸릉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난 눈을 뜨고 어깨를 움츠린 채 주변을 살폈다. 그 소리는 다름이 아닌 변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니 변기물이 내린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내려가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난 놀라자빠질 뻔했다. 너무나 무서워서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아무도 없는 집의 현관 센서등이 갑자기 켜지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그때 심장마비로 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분명히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안 났으니 누가 온 건 아니었다. 난 어깨를 잔뜩 세우고 공포에 휩싸여 현관을 노려보았다. 켜졌던 센서등은 시간이 지나자 조용히 다시 꺼졌다.

난 너무나 무서워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후다닥 TV를 켜고 볼륨을 한껏 올렸다. 조용한 집에서 자꾸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남편이 들어왔다.

"여보! 우리 집에 귀신이 살아."

"무슨 소리야?"

"내가 샤워하는데 누군가 변기의 물을 내렸어."

"뭐?"

"그리고 나왔더니 현관 센서등이 혼자 켜지잖아. 귀신이 변기의 물을 내리고 밖으로 나갔나 봐."

내 말을 들은 남편은 픽하고 웃었다.

"왜 웃어?"

"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

"뭐? 진짜야?"

내 눈은 더 커졌다.

"그거 별 거 아냐. 내 생각에는 변기 리모컨이 뜨거운 습기에 반응하는 것 같아."

난 다른 사람말은 몰라도 남편말은 다 믿는 편이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편이니까.(뭐 요즘은 정말 내편이 맞나 하는 생각을 종종 아니 자주 한다.)

"진짜야? 그럼 현관 센서등은?"

"그것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은데 안방 화장실 스위치를 끌 때 현관 센서등이 반응하는 경우가 있대. 두 개가 연결돼있나 봐."


얼마 전 지인에게서 들었던 섬뜩한 사연.

지인의 딸이 어느 날 퇴근하고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딸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왠지 싸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의 느낌이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딸은 중간중간 안보는 척하면서 흘깃흘깃 봤는데 왠지 그 아주머니가 계속해서 자기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뭐 딱히 별 수는 없었기에 애써 외면하다가 목적지에서 내렸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빠른 걸음으로 개찰구를 빠져나오려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났단다. 딸은 설마 하는 마음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따라왔는지 그 아주머니가 바로 뒤에 서서 자신을 부르더라는 것이다. 역시 그 모습이 상당히 이질적이라 딸은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딸은 "저요?"하고 물었고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왜 그러세요?"

"할 말이 있어서요."

"저한테요? 무슨 말이요?"

"아까부터 봤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아."

"네?"

"아가씨 옆에서 어떤 할머니가 발가벗은 채로 계속 울고 있어."

여기서부터 딸은 왠지 으스스해서 이가 덜덜 떨렸다고 한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어봐, 원한 가질만한 조상 없는지."

"네?"

"엄마가 있다고 하면 한복 한 벌 사서 할머니를 위해 태우라고 해."

"무슨 말씀이신지...."

그 말을 끝으로 이질적이던 아주머니는 빠르게 사라졌다고 한다.

딸은 집에 와서 들었던 이야기를 했고 지인은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엄마의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 때문에 속만 썩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긴 했는데....."

지인은 찝찝한 마음에 한복을 한 벌 사서 시골 공터에서 태웠다고 한다.


다시 돌아와서 남편에게 내가 물었다.

"당신은 귀신을 믿어?"

"난 안 믿어."

"믿어야 돼!"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왜 믿어야 돼?"

"귀신은 자신의 존재를 안 믿는 사람 앞에 나타난대."

"넌 그래서 믿어?"

"당연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