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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둘 Jan 29. 2024

아빠의 두 번째 그녀2

새엄마는 아빠보다 일곱 살이 어리다고 했다. 

하지만 후에 알게 된 사실은 그와는 좀 달랐다. 새엄마는 아빠보다 정확히 열세 살이 어렸다. 그 말은 오빠보다 고작 열세 살이 많다는 뜻이었고, 그 말은 우리 집에 새엄마로 들어왔을 때의 나이가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난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좀 놀랐다.


스물여덟 살의 여자에게 열다섯 살의 사춘기 남자중학생은 여간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도 착하고 협조적인 중학생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원망으로 똘똘 뭉친, 그리고 그 원망만큼 많은 숫자의 여드름이 반항적으로 얼굴을 뒤덮은 남학생이 말이다. 

하루하루가 금방이라도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살얼음 같은 분위기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삼 남매를 떠안게 된 스물여덟 살의 여자가 훨씬 안쓰럽게 보이는 주인공이겠지만, 내게는 여드름이 얼굴을 뒤덮은, 막 사춘기에 들어선 오빠가 주인공이었다. 만약 새엄마와 오빠가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난 반드시 오빠의 편에 설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새엄마의 입장에서 반항하는 오빠가 얼마나 미웠을까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집에서 오빠를 쫓아내도 괜찮았다는 말은 아니다. 

사춘기에 엄마를 잃고 이유 없이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던 오빠는 그런 불우한 환경 아래에서도 다행히 잘 자랐고 잘 살았다. 물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새엄마를 아빠에게 소개했던 사람은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아빠가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건 아니다. 단지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아빠를 잘 알아서 새엄마를 소개했다고 했다. 

어쩌면 소개를 해 주는 대가로 교회에 나오기를 종용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고 나자 아빠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게 목사님 때문이었는지 새엄마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아빠는 객관적으로 봐도 잘생겼었다. 그건 내 생각이 아니라 주변에서 늘 하는 이야기였다.(안타깝게 아빠의 잘생김은 오빠와 내가 아닌 내 동생에게 몰빵으로 유전되긴 했지만.....)

아빠는 잘생긴 데다가 당시에는 안정적인 재산도 있었다. 그러니 비록 재혼이라고는 해도 주변에서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이모가 말했었다. 그렇듯 아빠는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재혼상대였다. 다만 아빠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우리 삼 남매라고나 할까.


아빠의 잘생긴 외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여유로운 재산 때문이었는지, 소개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엄마는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결정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새엄마의 입장에서 어쩌면 아빠가 일종의 구원의 손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원을 바라고 아빠와 결혼했겠지만 집에는 오히려 구원해야 할 세 명의 자식이 있었으니 아무리 알고는 했다지만 새엄마의 인생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술과 담배에 절어 살던 아빠가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교회에 다니며 장로님이라고 불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었다. 장로님이 되기 위한 과정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빠는 순식간에 장로님이 됐다. 어쩌면 자신의 소개로 결혼한 아빠에게 목사님의 특혜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낙하산이었든 믿음이었든 장로님이 된 아빠가 낯설었다.


낯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난 그런 아빠의 모습이 좋았다. 아빠한테서는 더 이상 술과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빠한테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았고 주말이면 양복을 빼입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난 교회가 적성에 안 맞았지만 아빠는 잘 맞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술과 담배가 아니라 성경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은 그야말로 존경스러운 장로님의 모습 그것이었다.


그렇게 새엄마는 아빠를 우리 이모의 표현대로 구워삶았다. 

"여편네가 네 아빠를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여우 같은 년!"

이모가 새엄마를 부르는 호칭은 그렇게 딱 두 개였다.

"여편네! 여우 같은 년!"

여기서 호칭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오빠는 끝끝내 새엄마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저기요!'

그것도 꼭 필요할 때면 어쩌다가 부르는 호칭이었고 성인이 되고 새엄마가 아빠와 이혼한 후에는

'그 여자'로 불렀다.


존경스러워 마지않던 아빠는 어느 날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로님으로서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달라졌으면 좋았으련만 아빠가 달라진 건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가만히 숨만 쉬고 조용히 밥만 먹는 질풍노도의 아들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고,(오빠는 죄가 없다. 그저 조금 삐딱하게 새엄마를 쳐다봤을 뿐이고, 밥 먹다가 새엄마의 말에 가끔 콧방귀를 뀌었을 뿐이다.)

새엄마에게 반항하는 내 동생에게는 생전 처음 싸대기를 날리기까지 하셨다. 난 아빠의 그런 행동이 양복을 차려입고 기도를 하는 장로님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모의 말이 맞았다. 

'그 여편네'가 아빠를 구워삶았던 것이다.

그 후로 앞서 말했듯 우리 삼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어렸던 우리는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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